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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새벽 98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315장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 요한복음 13:1-11 ‌ 13장에서는 유월절 하루 전 날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엿새 전이었고 이제 시간이 지나 유월절 바로 전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자신이 어린 양이 되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지십니다. ‌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을 심판하고 백성들을 구원한 민족 해방의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을 기념하며 이스라엘 민족들은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다스릴 참 모세 같은 메시아를 바라는 감정이 충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왕이 되셔서 모세처럼 이스라엘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지도자들에게도 거슬리..

마지막 날과 심판

요한복음 12:44-50 빛 광 ‌ ‘빛 광’자는 ‘사람 인’에 ‘불화’자가 그 위에 있습니다. 사람 위에 불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성령의 불이 있어야 합니다. 불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에 있습니다. 우주에 인간이 홀로 있으면 캄캄한 어둠이고 그 온도는 영하 270’C입니다. 엄청나게 추운거죠. 열이라는 것 자체가 감지되지 않은 온도라고 합니다. ‌ 칼 세이건 ‌ 그래서 칼 세이건이라고 하는 천문학자는 말합니다.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사랑뿐이다.” - 칼 세이건 ‌ 보잘것 없는 인간이 이 광활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과학자의 언어는 아닌데 과학자가 말하니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더라.

요한복음 12:37-41 1) 표적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12:37-41) ‌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지만 사람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신기한 존재로 여기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더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살아가지만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에는 마음을 닫습니다. 변화란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삶에 이익이 되지 않는 변화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이유는 이사야서에서 이미 증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53:1 에 보면 ‌ “..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다

요한복음 12:1-8 유월절이라는 시기를 계속 말하고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죽으실 날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께서 죽으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7절에도 “나의 장례할 날”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생깁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나아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는 사건입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잔치를 하기 위해 밥을 만들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죠. 언니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겠지만 마리아는 일하기보다는 예..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다

요한복음 11:45–57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표적을 본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한 부류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고요. 다른 부류는 놀라운 표적임에도 믿지 않은 부류입니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합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정도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바리새인 편에 서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의 자리와 욕심을 채우기에 예수님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몰아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

예수의 눈물

요란복음 11:28:37 찬송가 263장 마르다는 믿음의 고백 후 마리아를 직접 부르러 갑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베다니 마을 앞에 계시고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오시지 않고 밖에 계셨던 이유는 아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려지면 또 다시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려 할까봐 몸을 피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맹인의 눈을 고쳤다가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받으셨고, 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가 신성모독이라며 잡히실 뻔했기 때문에 피하셨는데 지금 또 잡힐 수 있기 때문에 피하신 것입니다. 마르다도 그걸 알고 마리아를 ‘가만히’ 부르러 다녀옵니다. ‘가만히’라는 말은 (λάθρᾳ, ..

그 일은 믿으라

요한복음 10:31-40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일컬으며, 하나님과의 일체를 주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이라고 간주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라는 말씀이 있다는 것으로 대응하십니다. 시편 82:6 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렇게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는 신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라고 말하지 않느냐,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귀한 아들이고 하나님과 연합을 이룬, 하나님과 ..

나는 믿지 아니할지리도 그 일은 믿으라.

새벽설교 요한복음 10:22-30 수전절은 헬라 왕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 제단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히브리어로 ‘하누카’라고 하는데요. 이는 ‘봉헌’ dedication이라는 뜻입니다. 헬라 왕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 일컬었습니다. 또한 그를 통해 신이 나타났다 하여, ‘신현’이라는 뜻으로 에피파네스라 불렸습니다. 기원전 169년 안티오쿠스 4세는 제국의 일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피지배민들의 종교와 관습을 금지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성전 제사와 안식일 준수는 금지되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을 탈취하여, 자기 성으로 가져갔습니다. 기원전 167년에는 성전에 이방인 신상을 세웠을 뿐 아니라 성전 제단에 돼지 피를 바쳐, ..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요10:7-11 찬송가 596장 지난 성탄절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서울 도봉구에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는데요. 25일 새벽에 어린 자녀를 살리려 품에 안고 뛰어내린 30대 아버지가 끝내 숨졌습니다. 3층에서 불이 났는데 불이 크게 났습니다. 바로 윗집에서 7개월과 2살 아이를 키우던 부부는 구조를 기다렸지만 여의치 않자 지상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남편 32 아무개씨는 7개월 된 둘째를 안고 뛰었고, 부인은 2살배기 첫째를 재활용 쓰레기봉투 더미 위로 던진 뒤 뛰어내렸습니다. ‌ 그런데 아빠는 추락 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서 병원으로 이송 되었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아내는 어깨 탈골이고 아이 둘도 다쳤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파악됐었습니다. ‌ 아이를 안고 뛴 아빠만 생명을 잃었습니다. 제..

강도

요 10:1-6 찬송가 570장 1절에 나오는 절도와 강도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절도 κλέπτης 는 은밀하게 와서 훔치는 자, 강도 λῃστής 는 폭력적으로 탈취하는 자를 암시합니다. 예수께서는 절도와 강도를 비유로 들면서 말씀하시지만 6절에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더 살펴보면 12:6에 가룟유다도 절도자로 불립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강도인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도와 강도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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