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로마서 7

종교의 의미

로마서 7:7-13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아마도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이 어떤 강력한 위기의 빛 속으로 들어서게 만드는 가능성, 죄를 눈에 보이는 것이요.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그 가능성이라." - 칼바르트, 로마서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을 유혹에 놓였을 때 먹지 말라고 했던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이자 우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고 먹으면 잘못된 것이구나 하는 법으로서 우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런데 8절처럼 계명이 있을 때 우리의..

역사의 유익

로마서 4:17-25 4장 17절 하반절에 "그가 믿은 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홀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련성 속에서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은 절대적인 기적이고, 순수한 시작이고, 그누언적인 창조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으로는 유대인들의 조상이지만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순수한 시작, 하나님의 구원되시는 창조를 통해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육체 안에서, 보이는 것 안에서 확증되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안에서 곧 그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불가능한 것들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순리..

믿음은 시작이다.

로마서 4:9-12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 할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조금 더 풀이하면 "너는 내 앞에서 순종하라", "흠 없이 살아라"입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 할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할례는 순종의 표시일 뿐입니다. 할례 자체로 구원과 의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시작점이 있지 않고 모든 시작점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의 법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삶의 모든 부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된 것에 대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유다 공동체가 이루어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작은 민족이지만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낸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견고한 테두리가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유다 공동체는 자신들의 특별함과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더욱 열심히 견고하게 성을 쌓았지만 그것은 겉만 쌓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형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과 내용이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행위들이 나타나게 될..

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

로마서 3:19-20 율법은 구약시대 유대 공동체가 지켜야 했던 법률을 말하지만 더 넓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신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위인은 없습니다. 저는 율법을 잘 못 지키는 사람입니다. 유럽을 통해서 즉,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들을 잘 지키는지 확인, 평가 해 본다면 우리는 바로 '내가 제대로 지키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자신 없어 집니다. 만약 '나는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일부분만 잘 지킬 뿐입니다. 누군가가 '나는 예배 시간 10분 전에 예배당에 도착해서 기도로 준비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원칙을 절대로 어길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언제 한 번은 무슨 일이 생..

나는 심판이 아니다

초대교회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었고 먼저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뒤에도 자신이 이방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항상 부정하게 여겨왔던 그들에게 이방인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여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쉽게 생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해보고 평가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신앙 생활의 공을 생각하면서 누가 더 잘 쌓아왔나, 저 사람이 더 신앙이 좋은가 내가 더 좋은가 이런 평가와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종

로마서 1:1-7 1.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그저 똑똑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섬기는 신하입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이 하는 말은 곧 주인이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종의 탁월함은 주인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며 주인이 원하는대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2.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파견된 자라는 것이죠. 자신 스스로에게서부터 시작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파송한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두 번째 단계이고 첫 번째로 계신 분이 있으시며 나의 정체성과 목적은 그 처음 되신 분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