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나는 심판이 아니다

E.step 2022. 9.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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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었고 먼저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뒤에도 자신이 이방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항상 부정하게 여겨왔던 그들에게 이방인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여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쉽게 생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해보고 평가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신앙 생활의 공을 생각하면서 누가 더 잘 쌓아왔나, 저 사람이 더 신앙이 좋은가 내가 더 좋은가 이런 평가와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얼마 안 한 사람을 향해서 ‘아직 나보다는 부족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기준으로 다른 이들의 신앙을 평가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이것이 부족하군, 저 사람은 아직 뭘 모르눈구나, ‘나는 부모 때부터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게 달라’라고 겸손하지 못하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도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남을 심판하는 순간 우리도 그 기준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옳고 그름을 말하고 나서 그 기준을 나에게도 적용해보면 나 자신도 그 기준에 합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비판의 말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해도 똑같이 들어 맞습니다. 그래서 너나 잘해라 라는 말이 생기나 봅니다. 저도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 서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만 항상 이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이 나에게 해도 되는 말이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나눌 때 나 자신을 향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군가를 정죄하고 평가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바뀌어 나가야지 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바꾸어 가자, 함께 해보자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고 우리를 옳게 이끌어가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기준도 그렇게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신앙적인 면에서 판단하려고 할 때 실수하는 경우가 그 사람의 세상적인 기준들을 보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돈이 많으면 신앙적으로 더 높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돈이 많은데 신앙이 좋구나, 신앙이 좋아서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또한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좋은 것들을 많이 가졌구나’라고 여기며 그 기준을 세상의 좋은 것들로 맞추기도 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변질시키는 것이고 참된 복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관계를 깊이하며 살아가는 자가 복된 복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적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복음을 아는 사람이며 복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아는 사람은 남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그 판단을 뛰어넘어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만 의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상적인 판단과 정죄 말고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판단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당시 로마 교인들의 판단이 사람의 구원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졌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인은 언제나 심판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이 멸하시는 족속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통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남아있는 관습과 생각들이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만 살았던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만 남아있습니다. 원칙과 법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율법이며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요.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이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회개할 수 있었는데 너희는 왜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인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희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처럼 너희와 다른 존재들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고 용납하심이고 길이 참으심이다.

너희가 유대인이라고 자만한다면 그래 좋다, 너희는 하나님께 먼저 선택받은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너희 유대인에게 먼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헬라인에게 갈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다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도 유대인들에게 먼저 가고 헬라인에게 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셨고 말씀을 맡았고 먼저 인도하심을 받았으니 오히려 너희는 더 잘해야 될 것이다. 먼저 된 자라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인도하셨으니 더 잘해야 하고 만약 먼저 기회를 잡았는데 못한다면 먼저 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도 그렇습니다. 첫째에게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첫째가 동생들을 잘 돌보거나 하면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잘못을 하면 첫째가 대표로 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들이 상처가 더 많은 것 같고 철이 먼저 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권한이 다른 이들을 심판하는 일에 쓰이면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자신이 받은대로 할 때 그 권한의 힘과 은혜가 더 강해지고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사람들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일에 열심히기보다 나를 죽이고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 판단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자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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