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창조주의 위치

E.step 2022. 9. 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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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9-18
"우리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보다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낫다' 또는 3장 앞부분의 말씀처럼 일부러 죄를 짓는 사람들과 비교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악을 행하는 자들과 비교하더라도 우리는 나 자신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나는 좋은 자식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의 타락한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모습 앞에서 아무도 자만할 수 없습니다. '나는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아', '나는 죄 많은 사람들 하고는 달라'라고 진정제를 넣고 있어도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다시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아니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겸손한척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게 무엇이 기독교 신앙의 원칙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겸손이란 자기에게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 힘을 자랑하지 않는 태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인간의 예의나 인성에 관한 차원이 아니라 나에게는 죄뿐이고 하나님에게만 선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10절에서 바울은 시편 14:1을 인용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우리는 생각합니다. 최소한 몇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은 의인이 아닐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들도 그들을 죄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불명예스러우니 그들은 비교적 하나님의 의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심오함이 있어서 진리를 알기도 하고 인생의 여러 경험들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지혜와 진지함으로 본질을 꿰뚫고 올바른 것을 통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그러나 11절 말씀처럼 "깨닫는 자도 없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할 겁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경건한 이미지, 혹은 하나님을 찾는 감동적인 모습, 이를테면 '기도' 같은 것이 하나님을 찾는 행위 아닌가?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존재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성경은 말합니다. "아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위대해 보이는 인물들이 감동스러운 모습도,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렇다면 조금은 더 아름다운 것이 있지 않을까요? 조금 더 종교적인 것, 그나마 더 아름다운 인간적인 특성이나 성취가 있지 않을까요? 여전히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결국 인간의 일은 15절 말씀처럼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간의 해우이와 공은 악한 모습들 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선하게 보고싶은 마음은 인간적인 바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선이 없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고 급진적으로 인간의 선에 대해 부정하는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조금이나마 하나님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조차 이룰 수 없습니다. 피조물과 하나님을 따로 보지 않으면 하나님도 알 수 없고 피조세계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은 다른 세상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습을 봤을 때 '아 우리는 인간이구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구나', '어두움이 가득하고 선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악이 아니신 분이 필요하구나, 인간은 서로 악을 공모하고 악을 따라다니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보게 되면서 어떤 인간을 넘어서는 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초월해서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시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들의 세계에서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도 어렵고 빛을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 너머에 계신 초월자가 우리에게 개입하셔야 우리는 '아 다른 세상이 있구나',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악을 따라 빠르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회개하고 우리 위에 계신,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참고
칼바르트, <로마서>, 복 있는 사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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