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믿음의 법

E.step 2022. 10. 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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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삶의 모든 부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된 것에 대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유다 공동체가 이루어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작은 민족이지만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낸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견고한 테두리가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유다 공동체는 자신들의 특별함과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더욱 열심히 견고하게 성을 쌓았지만 그것은 겉만 쌓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형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과 내용이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행위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내용과 중심은 잊혀지고 형식과 껍데기만 남는다면 그 껍데기만을 위해 살아가고 그것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여러 율법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여러 옷으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가 겉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면 본질을 흐리는 일입니다. 밥은 먹지 않고 옷만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좋아 보이는 우리 믿음의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그것에만 집중하다가 그것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내것이 되어 버립니다. 내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내 의가 아닌데 내가 이루어낸 구원이 아닌데 내가 열심히 행하는 것들로 인해 내 자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자랑이 위험한 것이 뭐냐면 다른 사람을 자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타인을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행했는지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 자녀의 행위로 사랑 받지 않습니다.

자녀가 등본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벌어오지 않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부정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고인물이 되어버린 형태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향하여 '내 자녀'라고 하시는데 인간이 인간을 향하여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 여기는 악한 모습입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하나님의 존재로서 행세하고 하나님을 소유한 것처럼 말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행위인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소유, 행위인 것처럼 행세하는 인간성"(칼 바르트, 로마서)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결백증을 조심해야 합니다. 타인을 보고 기피하는 몸짓과 상종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빛.

잘 안 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믿음의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하나 없고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자리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행위로 의롭다고 여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법을 마치 주입식처럼 알고 있다면 이 은혜로 얻은 의로움이 맘에 안 들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열심히 종교적 열심으로 의롭다고 여김 받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고 확실한 공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냉정하다 할 정도로 우리의 공을 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사람,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여기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낀 사람,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이 은혜구나'라고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정말 열심히 산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사람의 모습은 누가봐도 은혜롭습니다. 자랑하지 않고 언제나 언제나 숨기고 자신의 권위를 낮추는데도 그 사람의 권위는 올라가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간의 악함을 말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 뒤에 부활이 있고, 어둠 속에서 빛을 내시는 하나님의 극적인 위대하심을 나타냅니다. 칼 바르트는 말합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역설적이고 극적인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의 법입니다. 오늘도 타인을 향해 행위의 법으로 보지 않고 믿음의 법으로 바라보시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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