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믿음은 시작이다.

E.step 2022. 10. 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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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9-12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 할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조금 더 풀이하면 "너는 내 앞에서 순종하라", "흠 없이 살아라"입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 할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할례는 순종의 표시일 뿐입니다. 할례 자체로 구원과 의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시작점이 있지 않고 모든 시작점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은 순수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시작됩니다. 사실 아브라함 자체도 유다 공동체가 가장 부정하게 여기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부정한 사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유다 공동체가구원의 뼈대라고 여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아브라함부터 그 믿음이 시작된 것이라면 유다를 구원할 분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 자녀일 뿐입니다. 믿음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작하시고 우리의 의로움의 근원지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한 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행위가 믿음의 시작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할례가 믿음의 시작이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는 무엇인가요?

순종입니다. 하나님 시작해 주십시오. 저에게 일을 시작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 주옵소서. 제게 이루시는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여 주심시오. 제가 순종하고 싶습니다. 순종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구할 것은 순종입니다. 물론 그 순종의 요구는 유대교인이 되라는 촉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복하라는 촉구입니다. 종교인이 되라는 요구가 아니라 비종교인이 되라는 촉구입니다. 우리의 모든 교회 안에서의 의식과 행위들, 봉사, 섬김, 이 모든 할례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표시입니다.

할례의 표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표시로 모든 세례와 섬김들까지도 그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 표시가 본질은 아니죠. 표시는 당연히 나오는 모습일 뿐이고, 우리의 믿음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안히 위한 기억으로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교회 일과 헌금과 선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흔적과 표입니다. 겉과 속이 바뀌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자 내용이고 모든 행위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어해야지'하는 기억 장치입니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라 자꾸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모든 열심이, 기도와 예배와 섬김 등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되시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는 행동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왜 하고 있지? 한다면 안 되고,
아, 내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지',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일의 정체성과 시작점을 늘 되새기고 기억해야 합니다. '내 삶의 싲가은 하나님이다', '내 은혜의 시작은 하나님이다' 고백하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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