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종교의 의미

E.step 2022. 10. 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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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7-13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아마도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이 어떤 강력한 위기의 빛 속으로 들어서게 만드는 가능성, 죄를 눈에 보이는 것이요.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그 가능성이라." - 칼바르트, 로마서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을 유혹에 놓였을 때 먹지 말라고 했던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이자 우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고 먹으면 잘못된 것이구나 하는 법으로서 우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런데 8절처럼 계명이 있을 때 우리의 죄성은 반역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더 탐심을 갖게 되고 죄를 짓게 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되는 인간의 죄된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계명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죄를 짓는지도 모르고 살았지만 우리가 계명을 알고 난 후에는 죄가 뭔지 알게 되고 죄가 살아나고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죄구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그동안 굉장히 비판했지만 바울이 비판을 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어떻게 감히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2세기에 살았던 '마르키온'은 구약성서를 모두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몇몇 서신과 누가복음만 받아들였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와 율법등을 모두 지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초월하신 분이시지만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폐할 수 없다. 도리어 굳세게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하여서 우리가 죄를 알고 인간이기 때문에 생활적인 것과 가르침과 여러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율법만을 위해서 살아가면 안되지만 율법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과 본질을 지탱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고 우리의 열매들로 자연스럽게 맺힐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종교의 형식을 가지고 종교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신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의 첫 계명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고 율법을 이루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주가 되는 것을 막고 하나님의 은혜가 핵심이 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향한 비판도 은혜를 온전히 이루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지만요. 우리는 종교에 갇힌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새벽에 나오신 분들이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항상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더 쓴소리를 듣고 그런 법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우리의 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분들이고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새벽기도'라는 종교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들은 하지 않지만 함으로써 기도의 열매를 맺고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초점을 두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법을 알고 종교적 삶을 삶으로 훈련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좋고 나와 하나님 사이에 선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기도가 없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읽어라'라는 하나님의 법을 통해 우리가 말씀을 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안 읽으면 안 된다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의 법을 통해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고 미워하면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쉽지 않구나, 사랑하는것이 어렵구나,

새벽기도를 안 나오니 내 자신이 실망스럽구나, 말씀 한 절 읽지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닐수록 이러한 율법을 더 깨닫게 되고, 종교적 실패를 느끼게 되고, 죄만 깨달아집니다. 죄밖에 안 보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으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깨달음이 곧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종교성과 열심으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깨닫는 시작점이 생기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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