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예수 안에 있다.

E.step 2022. 12. 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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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6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이 모두 지양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계심으로 내가 그 예수 안에 들어감으로 내게 있던 모든 잘라벌야 할 것들은 잘려 버리구요. 예수께 맞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구요. 예수께 어울리지 않는 내 것들은 버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께 있음'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내 삶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예수께서 내 삶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체가 모든 것을 버려짐을 받고 예수께 맞춰지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새로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는 새로운 인간은 정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체가 심판자에게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정죄한다면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정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선고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집행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게서 이미 선고를 받으시고 재판을 끝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지 않습니다. 이미 끝난 판결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삶을 시작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종교적 계명과 규칙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했습니다. 종교적 열심은 우리를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처벌할 것입니다,. '구원 받으려면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더 열심히 해야돼'라고 재판하고 징계를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이끄시면 우리는 자유로움으로 인생의 목적지로 걸어갑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억지로, 나 자신을 정죄하며 걸어가고 있다면 그 길은 종교적 길이며 복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루터가 말했듯이 "교리가 아니라 생명이며, 말이 아니라 존재이며, 표징이 아니라 충만함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구원열차를 탄 승객입니다. 우리가 기관사가 아니구요. 우리가 만든 기차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차는 안전하며 믿을만한 기차입니다. 기차에 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께서 이끄시는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구요.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도 하고 창 밖 풍경을 보며 감탄하구요. 정거장에서 다른 승객들이 타면 '당신이 왜 타세요. 얼른 내리세요'하며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와 새로운 사람이 또 탔구나' 더없이 기뻐하며 맞이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길에서 버려진 우리를 기차에 타라고 하셔서  살려짐을 받은 자유로운 자의 삶입니다. 

 

3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건가요? 죄를 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그 의로움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으로는 이룰 수 없는 율법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를 통해서 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감히 상상하거나 짐작할만한 사건과 크기가 아닙니다. 덴마크의 기독교 사상가 키에르케고어가 말한 것처럼 "그 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없음 속에 계시는 만큼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나님에 때해 알 수 없는 만큼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시는 방식,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만큼 커다랗고 무한한 힘과 계획에 의해 운영됩니다. 측정할 수 없는 육신의 모양으로 예수께서는  죄를 정하게 하는 통로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고 이를 수 없는 율법의 요구 4절 말씀처럼 의로움에 이르려고 했던 율법의 요구. '너희는 의로워져라,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져라, 종교가 너희를 의롭게 할 것이다.'라는 율법의 요구, 종교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있다구요.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인데요.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들, 육신 즉 육적인 것들, 물질세계의 것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썩어질 것들이고 쇠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영의 일이라고 우리의 영으로 구하지만 사실 육적인 기도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들이 아니라면 모두 육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명예이고, 자신이 망신 당하지 않기 위한 기도의 노력들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족해 보이지 않기 위해, 교회 안에서도 그 논리가 들어와서 교회 안에서도 부족해 보이지 않기 위해 교회 안에서도 인정 받기 위해, 종교적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한 열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삶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닙니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듯이 생명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내 영광과 내 의입니다.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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