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마지막 날과 심판

E.step 2024. 5. 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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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44-50
 
빛 광
 
‘빛 광’자는 ‘사람 인’에 ‘불화’자가 그 위에 있습니다. 사람 위에 불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성령의 불이 있어야 합니다. 불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에 있습니다. 우주에 인간이 홀로 있으면 캄캄한 어둠이고 그 온도는 영하 270’C입니다. 엄청나게 추운거죠. 열이라는 것 자체가 감지되지 않은 온도라고 합니다.
 
칼 세이건
 
그래서 칼 세이건이라고 하는 천문학자는 말합니다.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사랑뿐이다.” - 칼 세이건
 
보잘것 없는 인간이 이 광활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과학자의 언어는 아닌데 과학자가 말하니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있어서고,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유는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부모님 사랑, 친구의 사랑, 부부의 사랑, 교회 안에서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 이러한 사랑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주의 어둠 속에 먼지 하나인 우리에게 빛을 창조하셔서 열을 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불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둠은 악, 악한 세력을 말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악한 권세에 의해 허덕이고 있을 때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빛입니다. 한줄기 빛이 되신 겁니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죽을 우리를 뜨거운 사랑으로 살리신 겁니다. 어둠인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 보여주셨고, 무엇이 길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사랑인지, 무엇이 구원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희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를 어둠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주님의 말을 듣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시고 품어주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습니까? 제자들도 예수님께 어리석은 질문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품어주십니다. 주님의 빛은 어둠에 있는 우리를 밝은 빛으로 감싸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욕하고 조롱하고 때리고 죽이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다 품으시고 다 짊어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어리석고 죄많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품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보면요. 일본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관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그 사람들 앞에 예수님의 그림을 가져다가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 침을 뱉고 밟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로드리고가 있었습니다. 로드리고에게도 관원들이 말합니다. 밟으라고 말합니다. 로드리고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관원이 말합니다. ‘네가 밟지 않으면 너를 따르던 신자들을 다 죽이겠다.’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그 예수님의 얼굴이 있는 그림에서 이러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안다.
 
나는 이 세상에 밟히기 위해 왔다.”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로드리고에게 나를 밟고, 배신하고 저들을 살리라는 음성처럼 들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자신이 침 뱉음을 당하고, 밟히고, 어둠에 있는 자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조롱과 매를 내가 아닌 예수께서 대신 다 맞으셨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 우리가 어둠에 있을 때 우리를 밟지 않으시고, 우리를 비난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일을 선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배신해도 예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때리고 조롱해도 예수께서는 희생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헌신의 사랑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눈물흘리고, 무릎만 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을 믿고 따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고난과 사랑을 닮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헌신하신 주님의 사랑을 알 때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은 더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이 우리 삶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를 살리시려고 고난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 주님의 위대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난과 사랑이 있어서 부활이 더 귀합니다. 그 부활의 은혜가 우리 삶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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