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1-8
유월절이라는 시기를 계속 말하고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죽으실 날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께서 죽으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7절에도 “나의 장례할 날”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생깁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나아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는 사건입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잔치를 하기 위해 밥을 만들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죠.
언니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겠지만 마리아는 일하기보다는 예수님과 같이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정적인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여러 사람과 같이 시몬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께로 다가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말합니다. 어디에 부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이 다른 것은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말이 전해지면서 조금 달라졌을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머리에 부었다는 것은 그때 머리의 의미가 그냥 머리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라고 볼 수도 있어서 머리나 발이 아닌 온 몸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발에 부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발에 집중하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은혜를 느끼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발이든 머리든 몸이든 그것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것이 다르기도 하고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생각하며 봐야 합니다. 그렇게 오늘은 발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리아는 매우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나드’는 굉장히 값비싼 향유인데요. 그 한 근은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수당이니까 300데나리온은 1년치 연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3,000만원에 해당하겠죠. 꽤 비싼 값이긴 합니다.
이 엄청나게 비싼 로마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머리칼로 그 발을 닦습니다. 머리카락을 풀어서 보여준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이고 거기다가 그것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에서 가장 밑인 발에 자신의 가장 높은 부분인 머리를 숙이는 드림입니다.
마리아의 머리칼은 예수님의 발 아래에 닿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둡니다. 자신의 오빠를 살리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그 예수님을 향한 겸손한 경배의 모습입니다.
2) 가룟 유다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12:4-8)
그런데 이렇게 감동적이고 경건한 장면에 찬물을 끼얹는 인물이 있습니다. 가룟유다입니다. 가룟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며 나무랍니다. 말하는 걸 봐서는 가난한 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돈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6절에서는 가룟유다를 향해 도둑이라고 말합니다. 돈에 대한 탐심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가룟유다가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고 알고 계십니다. 이미 가룟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고요. 양들을 돌보며 생각하는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룟유다를 향해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물론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비하게 되었고요. 예수님의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의 겸손한 헌신, 전적인 헌신은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순수한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경제적 가성비를 따지기보다 그저 예수님께 드리는 순수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런 바보같은 헌신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가 헌신하는 것을 계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경제적 손실과 이익을 따지며 헌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그저 순수함으로 엎드려 헌신하는 마리아와 같은 드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도 그 비싼 향유를 자기에게 붓는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으셨을까요? 아까워하셨을수도 있죠. 조금 당황하셨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고 경제적 풍요도 정말 중요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런 것보다 먼저 순수한 믿음이 먼저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그 주님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신앙의 고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고백 위에 이웃 섬김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에서 시작해서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될 일은 주님 앞에 나를 순전하게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경제적 이익 따지지 않고, 가성비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그저 주님 앞에 머리를 숙여 엎드리는 신앙 고백이 가장 먼저입니다. 우리 모두가 깊고 순전한 신앙 고백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신앙이 먼저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순전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겸손함이 있게 하옵소서. 주님과 먼저 사랑의 관계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가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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