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예수의 눈물

E.step 2024. 5. 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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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복음 11:28:37
찬송가 263장

마르다는 믿음의 고백 후 마리아를 직접 부르러 갑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베다니 마을 앞에 계시고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오시지 않고 밖에 계셨던 이유는 아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려지면 또 다시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려 할까봐 몸을 피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맹인의 눈을 고쳤다가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받으셨고, 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가 신성모독이라며 잡히실 뻔했기 때문에 피하셨는데  지금 또 잡힐 수 있기 때문에 피하신 것입니다. 마르다도 그걸 알고 마리아를 ‘가만히’ 부르러 다녀옵니다. ‘가만히’라는 말은 (λάθρᾳ, 라뜨라)라고 해서 ‘은밀히, 몰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집에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오셨다고 전합니다. 마르다도 마리아와 예수께서 조용히 만나서 위로 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했겠죠. ‘마리아야 저기 예수님이 오셨어, 조용히 가서 인사하렴,’ 이렇게 말했겠죠?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함께 예수님 품에 안겨서 가만히 위로 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전은 실패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갑니다. 결국 마리아와 예수께서 만나시는 걸 다 보게 됩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울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온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습니다. 비통하다는  ἐμβριμάομαι(엠브리마오마이)라고 해서 ‘책망하다. 영혼을 꾸짖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떠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다, 누르다의 의미를 가지고고 있습니다.  특이한 의미죠? 예수께서 마리아가 우는 모습과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자기 마음을 꾸짖었다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시면서 자기 마음을 책망하셨을까?

먼저는 사람들의 눈물을 보시고 예수님 자신도 마음이 아파 슬프셨을 것입니다. 나사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느끼셨고, 자신도 나사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아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였었는데 그가 떠났기 때문에 함께 슬퍼하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이 예수님에게도 큰 슬픔인 것입니다.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과 이제 살아날 것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날 그 마지막 일을 떠올리시며 자기 마음을 꾸짖으시며 절제하셨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죽을것 같은 고뇌에 차서 땀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에게도 십자가의 고통은 너무 커다란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들이셨다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께서는 번민하며 기도하셨고, 그 잔이 피해지기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사로의 죽음과 이제 살리실 일을 행하시기 전에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시며 마음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고난 받을 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슬퍼하시며 자신의 마음에 끌어오르는 그 두려움과 고통을 꾸짖으시며 비통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예수께서는 비통해 하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고 여전히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여러가지 마음이 드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슬픔, 자신의 고난에 대한 슬픔, 여전히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을 향한 애통함, 이러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비통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나사로에 대한 슬픔
자신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두려움을 절제하심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함에 대한 애통

말씀을 통해 우리도 눈물이 있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는 다른 이의 아픔에 대한 눈물입니다. 우리 주변에 영혼이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며 살지 못하고, 예수님의 생명 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영혼이 죽어서 악한 것들에 사로잡혀서 살아갑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구해주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 가지 고통으로 인해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 어려움, 육체적 질병, 정신적 어려움 때문에 삶이 어렵고 영혼이 무너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 영혼들을 향해서도 눈물 흘리며 기도해서 그 영혼이 회복되고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아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새 생명으로 변화시키실 것을 믿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고난과 힘든 것들은 그저 힘든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분이기 때문에 고난 중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내 자신을 주님과 함께 못박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그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못할 것이고 그저 내 힘든 것들 앞에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우리가 눈물만 흘리고 끝나지 않고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소망으로 회복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예수님을 위해 눈물 흘리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새롭게 살아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은 우리 때문에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의 아픔, 깨닫지 못하는 모습들로 인해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눈물 흘리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비통해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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