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다

E.step 2024. 5.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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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45–57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표적을 본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한 부류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고요. 다른 부류는 놀라운 표적임에도 믿지 않은 부류입니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합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정도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바리새인 편에 서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의 자리와 욕심을 채우기에 예수님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몰아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권력과 욕심을 지킬 수 있는지만 관심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공회원들의 반응들(11:47-53)
47절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읍니다. 공회는 산헤드린이라고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이 모이는데요. 산헤드린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에서 많이 언급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한 번 등장합니다. 산헤드린이 뭐하는 곳이냐면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받았습니다. 유대의 종교적, 행정적 문제를 결정하고 재판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였습니다.

지방에도 약 23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단위의 산헤드린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71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지방 공회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위치한 최고 의결 공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산헤드린에 속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옵니다. 이 지도자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들’을 견제하고 걱정했는데요.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아마 가장 결정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48절에 그들의 걱정과 위협을 받는 생각이 드러납니다.

48절에 보면요.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까봐 걱정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와 땅과 성전을 빼앗길 것을 걱정합니다.

이렇게 나라의 지도자들이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권력과 욕심, 고집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말씀의 의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의 틀이나 법, 율법만 지키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통과 관습입니다.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가치관을 흔드는 예수님을 향해 거부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해오던 관습을 흔들고 지키던 것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일들이 싫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들어올 때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우리의 옛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내 이익을 챙기기 보다는 주님의 뜻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신다는 것은 내 안에 있던 옛 습성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더라도 우리가 옛습성을 지속적으로 깨뜨리지 못하면 우리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할 뿐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드림으로 옛 것들을 자꾸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이는 기도와 생각을 계속해서 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 삶에서 본질과 목적이 되지 못하고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내 자리와 내 권력과 내 이익을 위한 예수님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하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살아갈 때 우리 삶은 옳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잡아 죽이자고 말합니다. 이 말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다고 말 할수는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잡아 희생시키고자 하는 태도와 예수님을 우리의 유익을 이루기 위한 분으로 여기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 목표가 되기보다 예수님을 위해 내 삶이 맞춰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모습입니다. 옳은 길을 따르는 자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내 자신을 헌신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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