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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하십시오.

어제 아동부 아이들이 성탄절 발표회 연습을 하고 학생부 아이들도 연습을 했습니다. 아동부의 몇몇 아이들이 남아서 연습도 하고 2층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하온이, 정원 이, 고은이 이 아이들이 재밌게 놀고 있었습니다. 셋이서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모릅 니다. 제가 지나가면 제게 말도 걸면서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저도 장난끼가 발동해 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발장 맨 위에 숨겨두었습 니다. ​ 아이들이 내려오다가 신발이 없어져서 단체로 맨발로 오더니 제게 신발 어디다 숨겼 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신발장에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알고 꺼내려고 했지만 키가 닿지 않아서 힘겹게 꺼냈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복수한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제가 2층에 올라간 사이에 제 신발을 가져가서..

어둠속에서 빛을 내시는 분

대림절 주간 2022. 11.28.월 새벽기도 마태복음 4:12-17 예수께서는 40일간의 금식과 시험을 지나시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있었던 요단강과 예루살렘 주변에 계셨을 것입니다. 수도에서 벗어나 원래 계셨던 북쪽 납달리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갈릴리가 있고 가버나움이 있는 예수님의 주된 활동 지역입니다. 그리고 유다 중심지에서는 아주 먼 북쪽 땅이기 때문에 변두리 사람들이었구요. 이방과 접경 지역이어서 유대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가난한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신 이유는 말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9:1-2 말씀입니다. "어둠 속에서 고통받..

예수 안에 있다.

로마서 8:1-6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이 모두 지양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계심으로 내가 그 예수 안에 들어감으로 내게 있던 모든 잘라벌야 할 것들은 잘려 버리구요. 예수께 맞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구요. 예수께 어울리지 않는 내 것들은 버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께 있음'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내 삶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예수께서 내 삶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체가 모든 것을 버려짐을 받고 예수께 맞춰지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새로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는 새로운 인간은 정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체가 ..

파우스트

지식에 대한 헛헛함이 파우스트를 괴롭게 한다. 아직도 알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차 있다. "내 가슴속에는, 아아! 두 개의 영혼이 살면서 서로에게 멀어지려고 하네. 하나는 감각으로 현세에 매달려 방탕한 사랑의 환락에 취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이 티끌 같은 세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숭고한 선인들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네."(v.1112) 방탕과 숭고의 두 영혼이 산다. 그동안 숭고한 존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인생이었을 것이다. 땅에서 살지만 천상의 존재들과 같이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숭고한 선인들이 천상의 노래를 하고 빛과 같은 진리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의자에 같이 앉고 싶을 것이다. 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배를 타고 물 위를 떠다니듯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이 세상의 원리를 자각했을..

2022.11.19

정서적 안정

아들은 내게 ‘안 사랑해’라고 말했다. 섭섭했지만 아들은 일부러 그랬다. ‘아들아, 아빠 사랑해?’라고 물으면 ‘아니 안 사랑해’라고 청개구리처럼 대답하는 것이다. 장난이 짓궂은 아이다. 장난이 가득한 아들에게 나는 사랑한다고 말 안하면 더 진하게 뽀뽀한다. 아들은 웃으며 버틴다. 아들이 사랑표현을 안 하는 아이가 아니다. 평소에 놀다가 갑자기 내게 달려와서 안기며 '사랑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대형 옷가게에 가면 아들과 숨바꼭질하기 좋은데(물론 가게 알바들에게는 미안하다) 수십개의 옷걸이 칸 사이사이를 다니며 자신을 숨기고 찾아보라며 도망친다. 그때 나는 아들이 달려갈 곳을 미리 예측하고 아들이 내 품에 안길 수밖에 ㅇ벗게끔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한다. 아들은 깜짝 놀라며 내게 그대로 기절하듯 안긴다...

일상 2022.11.08

종교의 의미

로마서 7:7-13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아마도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이 어떤 강력한 위기의 빛 속으로 들어서게 만드는 가능성, 죄를 눈에 보이는 것이요.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그 가능성이라." - 칼바르트, 로마서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을 유혹에 놓였을 때 먹지 말라고 했던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이자 우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고 먹으면 잘못된 것이구나 하는 법으로서 우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런데 8절처럼 계명이 있을 때 우리의..

언약을 이루시는 헤세드 하나님

시편89:3-18 시편 89편은 기원전 500년 이후인 포로기 이후에 쓰였을 것으로 보는데요. 유다 공동체가 이미 멸망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상기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에게 ‘너의 나라가 영원하게 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말씀이 무너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떠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서 맺어졌던 언약이 무너졌는데, 이 기자는 다시 그 언약을 떠올립니다. 2절부터 보면요.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인자하심’은 ‘헤세드’입니다. 또는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헤세드’는 계약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되는 계약에 대한 견고, 충성,..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디모데전서 4:4-5 디모데는 젊은 목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훈련을 받은 제자였지만 그가 섬기는 에베소 교회는 헬라 신전이 많았고 학문적으로도 왕성한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도 에베소 지역이 나오면서 두란노 서원이 등장하죠. 바울이 석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했던 철학 강당이었습니다. 에베소는 헬라 신화와 철학으로 바울이 영적으로 학문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 보통이 아니던 장소였습니다. 그런 에베소 지역을 젊은 제자인 디모데가 바톤을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겠죠? 아마 지금 저와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단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과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지주의인데요. 영..

역사의 유익

로마서 4:17-25 4장 17절 하반절에 "그가 믿은 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홀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련성 속에서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은 절대적인 기적이고, 순수한 시작이고, 그누언적인 창조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으로는 유대인들의 조상이지만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순수한 시작, 하나님의 구원되시는 창조를 통해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육체 안에서, 보이는 것 안에서 확증되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안에서 곧 그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불가능한 것들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순리..

믿음은 시작이다.

로마서 4:9-12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 할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조금 더 풀이하면 "너는 내 앞에서 순종하라", "흠 없이 살아라"입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 할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할례는 순종의 표시일 뿐입니다. 할례 자체로 구원과 의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시작점이 있지 않고 모든 시작점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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