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피차 안위함

E.step 2022. 8. 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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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8-15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해 감사를 표시합니다. 그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합니다. 다른 것 아니구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감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통로 역할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로마의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서 믿느 ㄴ자들이 믿음을 전파했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을 널리 알린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났을 때 그것이 감사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에 충실해서 충실하게 전파되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안 좋은 소리를 듣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처럼 살더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에서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에 신앙인인 것입니다. 로마의 강한 제국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믿음이 세상에 전파가 됩니다. 조롱이든 칭찬이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온 세상에 전파됩니다.

믿는 자들의 다른 것들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 아닙니다. 믿음이 전파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신뢰,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도 죽을지라도, 죽일지라도 다시 살리신다는 신뢰, "이들은 그 예수를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더라"라는 믿음에 대한 소문이 퍼집니다.

바울은 "로마의 믿는 자들이 예수 믿고 중산층이 되었더라"라고 해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요. '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나의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울 사이의 친밀함을 말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 여기는지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이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 내가 관계해 온 하나님,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택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둘만 아는 친밀함, 우리가 함께 해 온 경험들, 함께 겪어온 삶의 사건들이 서로를 향해 '나의 것'이라는 신뢰의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너희를 만나기를 그래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고 기도합니다. 신령한 은사가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설교하는 것,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받은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옮겨가며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알리는 은사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찾아가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느 ㄴ목적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서로간의 이 만남을 통해 피차 안위함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나 서로에게 안위가 됩니다. 복음과 은사를 전하는 자와 받는 자가 있을 때 그것을 받는 자만 안위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는 자나 받는 자나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안위를 주셔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주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안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 않고 배우느 ㄴ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배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가 배우고 가르침을 같이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피하고 싶은 사람은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습니다. 권위의 자리에 있을수록 더욱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항상 배웁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이 목회자를 가르치고 훈련시킨다고 생각하는 교회도 있는데요. 그렇게 심하게 가면 안 되겠지만 우리가 피차 안위함을 얻고, 다른 의미로는 '격려'라고도 합니다. 서로 격려하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가르친다'라고 하지 않고 '나누어 준다'라고 표현 합니다. 제 자리는 말씀을 맡은 자리이지만 항상 함께 공유하고 나눈다는 마음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저 하나님의 통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 모든 자를 향한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든, 그리스인이든,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든, 많이 배운자나 못 배운자나 모두에게 동일한 복음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복음을 이방인들이 더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교회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파가 생기고 갈등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전통적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파가 생기고 갈등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전통적 유대인과 헬라 문화에 익숙한 유대인 간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모두에게 들어갔으며 바울은 이 모든 자에게 자신이 빚을 졌습니다. 이들 모두가 복음을 받아들인 것, 자신을 도와주는 모든 자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모든 생명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빚은 특정인에게만 있지 않고 가릴 사람이 없습니다. 야만인이든 어리석은 자든 서로를 향하여 결려를 받고 견고해지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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