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주일저녁예배

양식의 의미

E.step 2023. 5. 1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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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27-42 

<너의 의미>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산울림이 원곡을 불렀고,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노래로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너의 한 마디 말이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말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한번 웃었다 그러면 심장이 뜁니다. 저 친구도 나를 좋아하는건 아닐까? 그 친구의 말과 표정과 몸짓 모든 것이 내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향긋한 바람도 다르게 보이고요. 구름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이 내게 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별거 아닌 것도 자기 스스로가 커다란 의미로 만들기도 하고요. 커다란 것도 작은 의미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여러분의 삶에서 하루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과 대화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육적 목마름을 해갈할 수단인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알립니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께서 배가고프실까봐 먹을 것을 사와서 음식을 나누려고 합니다. “랍비여 잡수소서”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황스러운 대답을 하십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당황하며 말합니다. ‘아니, 누가 예수께 먹을 것을 가져다 드렸느냐, 내가 사온다고 하지 않았냐, 그리고 랍비여,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어야죠. 혼자만 맛있는걸 드시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한 솥밥 먹는 한 식구 아닙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회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무엇이냐면요. ‘네 인생의 목표가 뭐야? 그게 가치있는 일이야? 그것이 네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어?’라는 질문입니다. 우리 뇌가 우리 자신을 향해서 질문을 한다는 거예요. 그 호르몬이 평생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죽을 때에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요. 또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뇌가 이 질문을 계속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 이루었다 하더라도 뇌는 또 다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묻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기본적인 욕구처럼 계속되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고 무엇보다 성공하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는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은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목표를 위한 단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루는 성공은 헛헛함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또 다시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루었다고, 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루는 일은 성장입니다. 끝을 내는 성공이 아니고요. 성장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구원 받은 자라는 성공과 성취감에 있는 것이 아니고요. 바울이 말했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화가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로서의 추구할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시고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자가 우리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어려운 사람도 마침내 천사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받으며 상속자가 되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양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을 이야기 하시다가 뜻과 일이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여기서 양식은 ‘뜻과 일’입니다. 양식은 먹는거죠? 즉 예수님께서 먹으시는 것은 뜻과 일입니다. 뜻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이 먹는 것이고, 일을 이루는 것이 예수께서 드시는 것입니다.

 

양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땅의 양식과 하늘 양식입니다. 파스타와 피자가 아니고요. 우리가 먹는 땅의 양식이 있고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 양식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음식을 먹으면서 배고픔을 채우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것도 먹으며 사는데요. 그것은 ‘의미’입니다.

 

하루를 살 때 우리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면 의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었는데도 야식을 시키는건 허무함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내 하루가 의미가 있었나? 열심히 했나? 무엇을 위해 열심히 했지? 뭐 하나라도 의미 있었던 일을 찾기 마련인게 인간입니다.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도 인간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의미는 뭔가요? 뜻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때 그 뜻은 무슨 의미인가요?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난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상황인데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 상황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이 일이 왜 일어난 것입니까?, 제가 오늘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바꿔 말하면 ‘이것이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늘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행하고 있는 그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매일매일 일하고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어쩌면 그저 흘러가는대로 흘러 보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 일은 아무 의미 없어, 내 삶은 별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삶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이고 칼빈은 이것을 직업 소명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직업과 모든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고, 나만의 일도 아니고, 교회 일이 아니니까 거룩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요. ‘거룩한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맡기신 소명의 자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을 나가서가 진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으로 파송되었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 있지만 여러분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셔야 합니다.

 

거룩한 부르심에 파송된 예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창한 일이 될 수도 있고요. 소소한 일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그 양식을 먹을 때 우리는 영적 배부름을 느낍니다.

 

‘내가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을 해냈구나’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을 때 신앙의 영양분과 근육으로 형성될 것입니다. 삶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함으로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세요. ‘하나님,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맡겨주신 일 잘 먹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모든 일을 하늘 양식으로 받아내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의미를 발견하는 실력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내 삶을 하나님과 잘 연결시켜서 의미를 살려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죠. ‘오늘 내가 누굴 만났는데 사람이 너무 좋아,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서 만나게 하셨어’ 이것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또는 ‘오늘 내가 문제가 생겼는데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나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생활을 하나님의 뜻이자 의미로 발견하고 변화시키는 실력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오늘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돌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심는 행위가 될 수도 있고요, 또는 거두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 37절

 

이것은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선교를 예상한 예수님의 기대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널리 퍼졌습니다. 예수께서 부정한 땅에 평화를 이루고자 가신 사마리아에 가셔서 심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때 크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미래를 상상하시고 배가 부르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양식’이라고 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에서 자신을 부르신 분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행할 때 배가 부르십니다. 우리도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룸으로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법을 먹고 풍족한 우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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