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주일저녁예배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다.

E.step 2023. 7. 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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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18

1. 1절에 그 후에라고 나와있는데요. 그 후에는 헬라어로 메타 타우타라고 합니다. ‘이것들 후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이야기상으로나 시간적으로 연관이 없을 때도 사용합니다. 이런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때와 같은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봐도 되는 것이 4장의 내용 뒤에 바로 5장의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4장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다음에 곧 바로 중풍병자를 고친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흐름상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라는 의미도 시간이 얼마 지나서’, 또는 그러다가 어느 때에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어느 날 유대 사람의 명절이 되어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이렇게 봐도 되겠죠.


3. 이렇게 1절인 이야기의 처음에서는 지금 어느 때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입니다. 어느 날 명절이 된 것입니다. 명절이 되어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계셨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요. 4장도 갈릴리에서의 활동 내용입니다. 갈릴리에 계시다가 이제 명절이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정확히는 북쪽 지방에 계시다가 남쪽 수도로 가셨습니다.


4. 유다 공동체가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명절은 세 가지인데요. 첫째로는 유대력으로 1월에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기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5. 또 유대력으로 3월에 있는 칠칠절입니다. 칠칠절은 오순절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첫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감사와 기쁨의 절기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것으로는 맥추절과 같습니다. 유월절 후 첫 안식일부터 50 되는 날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날도 큰 명절입니다.


6. 세 번째는 초막절입니다. 유대력으로 715일입니다. 우리 달력으로는 9월에서 10월입니다. 출애굽 당시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즐기던 축제입니다. 또한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감사하는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이 세 절기동안에는 노동이 금지되었습니다. 또한 이 세 가지 절기 동안 모두 거룩한 날로 모여야 했습니다.


7. 세 가지 중에 어느 명절인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셋 중에 하나겠죠. 이 절기들은 모두 축제의 날입니다. 우리도 명절이 되면 좋아하죠. 아마 쉬는 날이라서 좋아한다는 개념이 제일 클 것 같습니다. 노동을 멈추고 쉬는 날입니다. 물론 쉬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더 좋아합니다. 학교에도 안 가고, 집안 어른들을 만나면 용돈도 받으니까요. 저도 명절이 좋은 이유는 용돈을 받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용돈을 주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조금 슬픕니다.


8. 어쨌든 축제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환호성이 있고요.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설레임도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축제에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절에 나와있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병자들입니다. 베데스다는 연못인데요. 이 연못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중에 북동쪽에 있는 양의문 옆에 있습니다. 이 연못은 돌로 쌓아져있고, 크고 깊이 파져있는 큰 연못입니다.


9. 베데스다라는 말은 -헤세드라는 히브리어인데요.  이라는 뜻이고요. 헤세드 자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합치면 자비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베데스다에는 행각 다섯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이 옛말이 많아서 어려운데요. ‘행각은 조선시대 궁을 보면 집 안에서 나와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통로를 말합니다. 주랑이라고도 하죠.


10. 집과 기둥 사이의 통로입니다. 위에는 지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붕과 기둥만 있는 곳에서 그곳을 집 삼아서 많은 환자들이 누워있던 것입니다. 눈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거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전 부속 보건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실제로는 암담한 모습이 가득한 곳이었겠죠.


11. 그런데 아픈 자들이 그곳에 모였던 이유는 간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물이 지하로부터 압력을 받아 분출할 때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천사가 때때로 내려와서 물을 휘저어 놓는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 물 속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때때로 분천수에 치유력이 강한 화학요소들이 많다고 하죠. 땅에서 솟아나는 물에 미네랄과 좋은 화학성분들이 많아서 병을 치료하고자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12. 그런 치유를 위해 환자들은 그 처참한 장소에서 서로 경쟁했습니다. 지금 그 자체로도 처참한 모습들인데 거기다가 그 병자들이 서로 경쟁해야 했습니다. 가혹한 세계입니다. 오랜 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이 그 안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워야 하는 치열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곳을 실제로 본다면 차마 보기 힘든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오랜 병을 버티며 사는 자들은 아마 죽어버린 사람을 훨씬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13. 그런 그 곳에 예수께서 찾아가십니다. 축제가 진행중인 나라의 중심에서 벗어난 아픔의 자리로 가십니다. 축제의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병든 자에게 찾아가십니다.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라고 해방시키십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명령이지만 사실 그 말은 그에겐 초청입니다. 구원으로의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명령이자 초청입니다.


14. 이제 그는 38년 동안 붙들려 있던 족쇄에서 해방되어서 걸어갑니다. 38년 만에 걸었으니 얼마나 많이 걸어다녔을까요?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짐을 들고 1킬로미터 이상 걷는 것은 안식일법 위반입니다. 일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라고 말합니다.


15. 유대인들은 38년동안 누워 있던 환자가 그리스도의 자비로 치료되는 감격에 동참할 내적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안식이 아닌 안식일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누리는 것이 아닌, 안식일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안식일 자체를 경배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은 세상의 질서를 멈추고 창조의 질서를 바로 잡는 날입니다.


16. 38년된 환자가 드디어 안식의 날에 들어간 것처럼, 안식일은 혼돈의 세상의 법칙과 굴레를 깨고 창조자에게 다시 돌아가는 안식의 날입니다. 그 날은 애굽 땅에서 노예백성으로 살았던 유대 공동체가 해방한 날이고요. 모든 사람들, 노예와 가축에게도 쉼을 주어야 하는 날입니다.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과 노예와 가축들까지도 혹사시키는 가진자들의 이윤을 억제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17. 우리의 영혼에 있어서는 하나님 안에서 쉬는 날, 그리고 세상적으로 봤을 때도 모든 경제적 논리를 멈추고 쉼을 주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습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은 안식이 아닌 안식일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어서 그 관습을 지키지 못하는 예수를 박해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진수를 보여주십니다. 안식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8.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참 의미를 살리기 위해 38년된 병자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구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가축이 물에 빠지면 구해주는 일은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구한 일은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은 병자를 죄에서 건지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19. 14절에서 예수께서는 네가 말끔히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병자의 상태를 죄된 상태로 보시는 것입니다. 죄는 영혼의 무능력, 또는 무의지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는 무능력, 무의지 상태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살고자 하는 순종을 거부하고 거기로부터 탈선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혼의 나태함과 무능력이자 불순종의 상태가 죄된 상태입니다. -김회권


20. 유대 공동체는 예수님의 행동이 못마땅했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시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관습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안주해왔던 삶에 불편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 삶에 질문을 던지고 내 삶을 낯설게 만듭니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존심으로 버틴다면 그리스도를 박해한 종교주의자들이 됩니다.


21. 그런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선포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도 그 분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자녀된 우리는 아버지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영의 생명을 죽이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 아닙니다. 주일은 안식일입니다. 일주일동안 세상의 방식대로 살았다면 주일만큼은 그 방식을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22.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나의 원칙과 신념, 평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긍휼의 눈으로,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방식으로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을 잠재우시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오늘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내 영과 타인의 영을 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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