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하이힐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E.step 2023. 4.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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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1-18

 하이힐은 원래 남성이 신던 신발입니다. 저도 여성들의 신발인 줄 알았는데요. 이 하이힐이 원래는 남성들이 신던 신발이라고 합니다. 조금 이상하죠? 아마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이힐이 처음 등장한 지역은 페르시아인데요. 처음에는 부츠처럼 카우보이 신발과 같은 모양으로 생겼었다고 합니다. 처음의 역사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 하이힐을 유행시켰던 인물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입니다.

 

키가 165cm가 안됐던 루이14세는 높은 곳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고 합니다. 저도 키가 작아서 공감이 갑니다. 그 루이 14세가 항상 신은 하이힐의 색깔은 빨간색이었습니다. 그래서 빨강 하이힐은 권위, 부의 상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루이 14세만 하이힐을 신었던 게 아니고요. 중세시대 유럽에서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었던 이유가 있었는데요. 바로 배수시설이 좋지 않았던 환경에서 길거리에 널린 오물을 피하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고 합니다. 높은 굽의 신발을 신으면 발과 바지나 치마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귀는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에게 어린 나귀를 데려오라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가랴 99절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언되어왔던 오실 구원자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의 완성을 위해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사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셨던 분이 아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지극히 순종하셨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분의 삶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가복음 1045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세상에 군림하는 왕이 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이14세처럼 하이힐을 신고 권위와 부를 보여주며 그 힘을 과시하는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왕이 되시는 분입니다.

 

나폴레옹 왕도 유명한 왕인데요.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남대서양 외딴섬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가 유배 생활 중에 일기를 남겼습니다. 나폴레옹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요. 말 위에서도 책을 읽고 유배지에서는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 유배지에서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 어느 날인가 전쟁터에서 전투가 치열하던 날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 자신을 맡겼던 순간, 그 순간입니다.”

 

나는 총과 칼 그리고 대포로 세상을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바늘 하나 들지 않고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이것이 예수께서 세상의 참 왕 되시는 증거입니다. 예수께서는 힘으로 다스리는 왕이 아니신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왕이 되셨습니다. 모든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그 예수님을 내 삶의 왕으로 모셔서, 예수님의 통치대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내 삶이 되고,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와 그 사랑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하이힐을 신으려는 나를 낮춰 주옵소서. 힘으로 군림하려는 내 자아를 다듬어 주옵소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겸손이 내 삶에 있게 하시고, 힘이 아닌 사랑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셔서, 내 삶이 사랑으로 살아지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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