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E.step 2023. 2. 1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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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로마서 9장 14-18절 14절에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라는 질문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의심이나 적대적 불신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형식의 방식이 바울의 말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강한 영향을 퍼뜨리기 위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수사적 기법에서 질문은 때로 직접적인 말보다 강한 힘을 가지기도 합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듦으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 답을 내리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든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당시 로마 공동체에게 논의가 되는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민족으로 여겨졌던 유대인들에게 질문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선택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하나님이 선택하시는게 불의하냐? 라는 질문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다는 것을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람이 있고, 구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권에 대해 우리가 따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 것이 우리가 불만을 품을 일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를 듭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 말씀입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다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택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자만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안주할 일이 아니다, 자만할 일이 아니다, 나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 그러니 너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여기지 마라, 너희가 주도권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6절에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달음박질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입니다. 모든 선택권과 주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존재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가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 간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완악하게 하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바로입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자, 구원에 이용되는 자, 악을 행하는 자로 바로를 사용하십니다.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을 행하는 인도자로 삼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푸셨지만 바로는 구원을 방해하는 악인으로 사용하십니다.

그것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출애굽기 9장에서 하나님은 일곱번째 재앙으로 우박을 내리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에게 가서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바로를 애굽의 왕으로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부당해 보입니다. 불의해 보입니다. 누구는 긍휼히 여기시고 누구는 악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정해져있습니다.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질 뿐입니다. 그 선을 넘는 것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모든 윤리와 선의 기준도 우리는 우리의 기준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가 인간임을 자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이 인정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버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일이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감사한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들이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아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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