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조금 있으면

E.step 2024. 7. 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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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16-24, 찬송가 191장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하나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이고요. 두번째는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못 보고, 또 조금 있으면 봅니다. 앞에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이고요.
 
뒤에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도 끝이나고 있습니다. 곧 잡히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께서 숨을 다하시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못 볼 것입니다. 매일 보던 예수님을 못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조금 있으면 또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말씀처럼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겠지만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제자들의 근심은 도리어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겠지만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제자들의 근심은 도리어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있으면'이 언제인지, 왜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못 보고 왜 또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는지, 그리고 왜 근심했다가 기뻐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보여주시고 나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에서 더 많은 것들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이 말씀은 조금 있으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예수께서 완전히 하늘로 떠나시고 조금 있으면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성령에 대해 이야기 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모두 근심하고 있을 때
 
다시 "조금 있으며"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오시는 성령님을 보는 것이 예수님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조금 있으면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조금 있으면'이라는 시간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께서 떠나시고 이제 조금 있으면 예수께서 마지막 때에 다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 시간을 말씀하시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와 달라서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져도 하나님에게 길고 짧은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우리느 ㄴ그때 모든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고생하고 근심하고 이해되지 않고 알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환난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것을 비유로 드시는데 해산하는 여인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잉태한 여인이 아이를 해산할 날이 다가오면 몸이 떨리고 긴장되고, 두렵습니다.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자신의 몸은 괜찮을까 근심하며 준비하지만,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를 낳고 아기를 보자마자 모든 근심과 고통은 사라지고 아기를 보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쁨으로 충만해 합니다. 예수께서는 새생명을 낳는 십자가 고통을 견디고 부활 후에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겪으시고 우리의 구원으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근심하고 곡하였지만 주님의 부활을 봤을 때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기뻐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하늘로 떠나셨을 때 이제 이 세상을 어찌 사나 근심하였지만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지금은 근심하며 살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세상에서 있었던 모든 근심과 고통이 기억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충만한 영광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23절에보면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께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묻고,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많은 것이 궁금했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보고 난 후에 모든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예수께서 누구이신지, 무엇을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인지 다 깨달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머리 속으로만 알려고 했던 예수님에 대해 이제 부활을 보고 경험함으로 믿음이 생겨서 그 감격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더이상 질문이 무의미합니다.
 
그저 모든 것이 믿어지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열정만 남아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기 전에는 예수님에 대해 의심과 궁금증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면 모든 생각이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중되게 됩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은 많지만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고 주님을 위한 삶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앎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앎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참 하나님과 그 아들 아는 삶이 영원한 삶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앎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면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구하라"라고 하시는 것은 성령을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9-13에보면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나오면서
 
마지막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시는데요. 그것은 성령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성령을 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주셔서 기쁨이 넘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충만한 기쁨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는 근심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오시면 다 기억도 안 날 일입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채우셔서 근심이 아닌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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