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6-12
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시편 22:22에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합니다. 예수께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 제자들을 형제로 여기며 주의 이름을 나타냅니다.
주의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이름이 없지만 우리는 부르기 위해서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가 묻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אֶֽהְיֶ֖ה אֲשֶׁ֣ר אֶֽהְיֶ֖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입니다.
'에흐예'는 '나'라는 단어인데요.
의미를 깊이 살펴보면 '일어나다', '뭔가가 나타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인간들에게 나타나셔서 뭔가를 일으키시고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일으키시고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자존적인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지만 사실은 그 이름 안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일으키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분의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시고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장 15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길게 풀이해 주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관계하시며 보여주셨던 사건을 자신의 이름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일, 이삭과 야곱에게 행하셨던 일, 그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와 관계하시며 행하셨던 일들을 말합니다.
시편 6:8을 보면요.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의 이름을 노래하여라. 주님을 찬양하며 그 앞에서 크게 기뻐하여라."
여기서도 '이름'을 찬양하라고 나옵니다.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분의 능력, 행하셨던 놀라운 일을 찬양하라는 것이며,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이름은 이름만 더윽러니 있는 분이 아니고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나타내시며 불리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등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분의 이름이 우리에게도 살아서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왔음을 보여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을 이제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몸이 되셔서 보여주신 모든 것, 하나님의 말씀이 몸이 되어서 보여주신 모든 것을 지키며 기억하며 행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빕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며 살도록, 그 말씀을 지키고 전하며 살도록 빌고 계십니다.
그런데 10절에 예수께서는 제자들 덕분에 자신이 영광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의 의미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께서 죽으셨기에 그 순종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 죽음과 부활이 가장 귀한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11절 마지막 부분에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보전하다'는 헬라어로 τηρέω테레오입니다. '지키다'라는 의미인데요. 상태나 위치, 행동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행동을 지키는 것입니다. 준수하다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대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동을 준수하며 하나님의 이름대로 지키며 살아낼 수 있도록 보전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보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주옵소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과 능력과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그래서 그 이름으로 우리를 보전하시고 우리가 그 이름대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