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수요강해

비난하는 사람 앞에서.

E.step 2024. 5. 1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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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출애굽 할 때 리더 세 사람이 나옵니다. 출애굽 리더 트리오입니다. 출애굽할 때 이 리더 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지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 사람을 리더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합니다. 이 트리오를 통해서 일을 시키신 겁니다.
 

 

미리암이 가장 큰 누나인거 같고요. 그 다음에 아론, 막내가 모세입니다. 나이는 정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모세가 막내인건 확실하고요. 미리암이 두 동생을 키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큰 누나로서 남 동생 둘을 키운 거죠. 미리암은 모세가 나일강에서 갈대상자 안에 담겨 떠갈 때 따라갔었습니다. 파라오의 공주에게 갈 때까지 따라갔고 모세가 엄마의 모유를 먹을 수 있도록 미리암 누나가 인도해주었습니다. 모세를 살린 사람이에요.
 

 

리더십이 있고 용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암에게 모세는 애기입니다. ‘내가 너의 기저귀 다 갈았어’라고 말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 다 키웠어’. 가장 나이가 많고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미리암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위치였냐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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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미리암은 선지자였습니다.
 
아론은 무엇이었을까요?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공동 리더인데 각자의 역할이 달랐습니다. 미리암은 선지자였고, 아론은 제사장, 모세는 율법받은 사람입니다. 미리암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꿈으로도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선지자이자 예언자였고 이것은 은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환상과 꿈을 통해 민족을 지도합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주셔서 그 은사로 지도력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죠.
 

 

그리고 제사장 아론은 백성이 하나님께 속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다음에 율법 즉 말씀을 받은 모세는 말씀을 통해 민족을 지도합니다. 은사과 예배와 말씀 세 가지가 각자의 역할을 따라 백성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가지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에 문제가 생깁니다. 누가 가장 으뜸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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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여호와께서 참으로 모세와 ‘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 ‘도’ 말씀한다.라고 말씀하시죠. 우리도 너 못지않게 하나님과 소통한다! 라는 겁니다. 단순히 리더십의 갈등문제가 아니라 출애굽하고 민수기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냐는 이슈입니다.
 

 

미리암은 예언, 아론은 제사, 모세는 말씀의 대명사입니다. 미리암 하면 ‘예언’, 아론 하면 ‘제사’, 모세하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드러내시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게 있는겁니다. 당시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거죠. 뭐가 더 중요하냐, 예언이냐 제사냐 말씀이냐의 문제가 백성들 사이에 논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새 땅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정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누구의 편을 들어주시나요?민수기 12:3 입니다.
 

 

 NKRV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의 온유함이 온 땅에서 최고다라는 겁니다. 온유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세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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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확실하게 편을 들어주십니다. 예언자는 환상이나 꿈으로 말해주지만 이것은 해석해야합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대면하여 명백히 말합니다. 해석할 것도 없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소통합니다.
 

 

‘온 집에 충성한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게 썼던 표현이고요. 요셉에게도 썼던 표현입니다. 이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집을 담당했고,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충성된 종이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온 집을 담당하는 총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 커다랗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편을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대면하여’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대면하다’는 히브리어로 ‘페엘페’입니다. 이것은 ‘입에서 입으로’라는 히브리 말입니다. 우리 말로는 비슷한 표현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해서 말씀하시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13절입니다.민수기 12:13
 

 

 NKRV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해서 나병에 걸립니다.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거죠. 이것이 모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모세에게는 복이었을까요? 자신을 비방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셔서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기쁨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도 잘못이 있었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신의 잘못을 향해 미리암이 비방했을 때 나병에 걸렸다면 모세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누나이자 공동의 리더로서 백성을 이끌고 있는데 그 미리암이 나병에 걸렸다면 모세에게 가장 큰 타격이고 모세가 가장 슬펐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 비옵니다. 제발 미리암을 고쳐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모세의 온유함과 관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비방했던 미리암이지만 모세는 미리암을 위해 치료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민중들의 비방과 조롱 소리를 듣고도 ‘저들을 용서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예수님의 마음과 닮아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온유했죠, 충성했죠, 관대함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필적할만한 대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말씀 중심인가? 제사 중심인가? 예언중심인가?입니다. 세 가지 중에 무엇일까요? 말씀, 제사, 예언 중에 무엇일까요? 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말씀이 중심이십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종의 은사들이 있습니다. 신비한 체험도 있습니다. 그 은사를 가지고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체험이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이 빠져있다면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텐데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체험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적 체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기록된 말씀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겁니다. 그러나 지키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말씀을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됩니다.
 

 

다른 체험이나 신비적인 것을 따라가기보다 인간의 가장 평범하고 궁극적으로 기본이되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우리 삶은 충분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만 해도 버겁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비방하지말라’와 ‘말씀이 중요하다’ 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충성입니다. 곧 온유함이죠. 온유함은 곧 충성이자 순종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비방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했듯이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비방이 아니라 온유입니다. 우리가 미리암처럼 은사를 가지고 있고, 신비적 체험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데 쓰여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일에 쓰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애를 많이 써요. 그런 사람을 보면 우리가 마음이 참 힘듭니다. 나의 잘못을 고치려는 말투와 눈빛 이런데서 우리는 마음이 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신앙적 경험들을 많이 자랑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말하며 자신이 보기에 잘못됐다고 여기면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특별한 사람이야, 나는 간증이 많은 사람이야, 나는 은사가 있어, 나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야, 이런 이유를 힘입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재단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은퇴하신 목사님의 글을 봤는데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기도에 몰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장기금식을 하고 나니까 태도가 조금 교만해졌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나 밤 9시 기도회는 참석하지 않고 지하실 골방에 들어가 따로 기도하고 심지어 자기가 체험한 환상이나 영의 메시지를 교우들에게 경박하게 발설하기도 하고, 때론 목사님의 목회에 대해 은근히 비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그 집사님을 불러 야단을 치고 싶어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자신은 일주일 금식도 제대로 못하고 신비한 영적 경험이 없어서 잘못하면 신앙적 질시로 비칠까봐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멀리 보내주시든지, 감당할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사님이 다른 교우와 크게 싸우더니 큰 실수를 저질렀고 끝내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그 집사님이 교회에 다시 찾아와서 모 신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추천서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목회자가 되라고 격려하며 추천서와 몇 권의 책을 드렸습니다. 그에 대한 미움이 풀려있는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들리는 말로 그 집사님이 교우를 만날 때마다 ‘내가 여기저기 많은 교회를 다녀보았지만 김 목사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목사님을 잘 모시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만약 김 목사님이 화를 못 참아 그를 혼내주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목회자를 비난했을 것이고, 교회 천장에서 귀신을 보았다고 했을 것이고, 헛된 말을 퍼트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온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비방과 기도의 선택지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비방하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니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죠. 미리암은 비방했지만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미리암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15절에 미리암이 정결예식에 따라 7일동안 속죄의 시간을 가질 때 백성들은 미리암을 기다립니다. 미리암이 나올 때까지 이동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미리암은수 많은 백성들의 인기를 가지고 있었고, 신망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온유함을 요구하십니다. 그의 말이 옳고 힘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온유함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따라 온유함으로 자세를 낮추어서 다른 사람에게 비방이 아닌 기도를 선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합심기도
 

 

하나님, 우리가 말씀 앞에 서게 하옵소서. 말씀을 보게 하옵소서. 말씀이 기준되게 하옵소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온유하게 하셔서 내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온유하게 기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주옵소서. 말씀으로 온유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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