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 에서는 칭의의 결과에 대해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 받은 우리가 누리는 결과가 무엇이며, 우리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며, 또 장차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본문의 개요
로마서5 장은 먼저 앞에서 논의한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것의 결과’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은 우리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우리는 장차 진노에서도 건짐을 받을 것입니다.
칭의의 결과(5:1-5)
1) 화평을 누림(1절)
2)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음(2상)
3) 즐거워함(2하-4절)
4)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함(5절)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5:6-11)
1) 그리스도께서 죽으심(6절)
2)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심(7-절)
3) 진노로부터의 구원(9-10절)
4) 하나님 안에서 자랑함(11절)
칭의의 결과(5:1-5)
1) 화평을 누림(1절)
바울은 먼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는 지속적인 동작이 아니라 단회적인 동작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단번에 의롭다 함 받은 것을 나타냅니다. ‘믿음으로’는 ‘에크 피스테오스’인데요. ‘에크’는 ‘~으로’입니다. 무엇으로냐면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는 ‘믿음에 의해,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를 의미합니다. 곧, 율법을 행함이 없이, 우리의 공로가 전혀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나타냅니다.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로워진 것이고요.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의로워진 것입니다.
1절의 주 문장은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인데요. 개역개정에서는 ‘화평을 누리자’라고 나와있지만 다른 사본에서는 ‘누리고 있다’라고 나와있기도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의견이 많지만 ‘누리자’보다는 ‘누리고 있다’가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절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윤리적 권면을 말하는 문맥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누리자’가 아닌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다’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는데 우리가 화평을 누리자라고 보기 어렵고 이미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화평’은 ‘에이레네’라고 해서요.
그리고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평화, 화목이란 의미입니다. 고대로부터 유대 사회에서 인삿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화평’이란 구약 시대에는 이웃간이나 국가간에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를 영적 생활에 적용시켜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영원하고 참된 평화를 누리는 것을 ‘화평’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화평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참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화평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화평과 화목을 동의어처럼 사용합니다.
그래서 2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자리에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은혜로서 가능한 겁니다. 부족한 인간은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지만,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는 즐거워합니다. 환난과 인내와 연단 속에서 즐거워합니다.
즐거워하다는 카우카오마이: 자랑하다는 뜻입니다.
환난은 뜰립시시스‘압박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내는 휘포모네 ‘참는 것’,
연단은 도키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또는 이겨낸 상태’를 의미합니다.
소망은 엘피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는 자는 압박을 당하는 환난에서 인내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인내를 통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길러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힘이 더 강해집니다. 결국 은혜의 사람은 곤경과 압박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그래요. 자기가 힘든 상황인데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된다고 그럽니다. 믿음의 사람의 말입니다. 이런 고백은 믿음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절망이 아닌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소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로 끝난다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실패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붙드시고 일으켜 세우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소망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화평하게 하십니다. 그 화평을 누리는 사람은 삶의 압박과 곤경과 인내와 연단의 시간이 있지만 결국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무조건,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렇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님이 계십니다.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셨어요. 1955년 12월 몽고베리 시립 공영 버스의 흑인 좌석차별 사건이 있었는데요.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고, 전국의 흑인들이 분노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 평화 시위로 이끌어 1년 만에 범국민적 지지를 얻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후에 흑인 해방 운동 및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래서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많은 흑인 관련 운동과 인권 운동을 이끌어 법률과 제도의 수정, 공민권법, 투표권법의 개정과 흑인의 권리를 증진했습니다.
I have a dream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이런 멋진 연설을 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죠.
흑인의 차별이 심할 때여서 칼에 찔리기도 하고,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마지막 죽음은 총에 맞아 암살되기까지 힘든 싸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킹은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의 내면은 강한 열정과 투쟁의 마음이었지만 흑인과 백인의 화평을 이루는 일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이기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죠. 사랑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증오를 증오로 맞서지 않고 사랑으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악으로 가득한 우리 마음과 우리 세상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확증하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잘났을 때, 우리가 깨끗할 때가 아니고요. 우리가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7절처럼 의인이라도 그 의인을 위해 죽을 사람은 없고, 선한 사람일지라도 그 선한 사람을 위해 죽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일 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확증하고 드러내며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이가 좋아지고 화평해졌다는 것을 알고, 우리도 내 옆에 있는 타자들에게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는 의로운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내구주 예수를
기도멘트
메시지 성경에서는 장 8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당신의 아들을 희생적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그렇게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낌없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화평을 다른 이들과도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셔서 화평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모든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라보는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
하나님, 우리가 쓸모없을 때에 희생적 죽음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헌신을 닮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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