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수요강해

여호야긴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

E.step 2023. 12. 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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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24-34

 

1. 예레미야 마지막인데요. 이제 예루살렘이 모두 망하고, 함락됩니다. 성전도 헐어졌습니다. 바벨론왕인 느부갓네살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던 장식과 기둥과 여러 전리품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물건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잡아갔습니다.

 

2. 성전의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를 사로잡아갑니다. 또한 군대를 통솔하는 내시 한 사람과 도성 안에 남은 왕의 시종 일곱사람과 군인을 징집하는 권한을 가진 군대참모장과 마지막으로 도성 안에 있던 평민 60명을 체포합니다.

 

3. 근위대장인 느부사라단은 이들을 체포해서 리블라 땅으로 데려가는데요. 리블라는 수리아 땅에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바벨론이 중근동의 서쪽 지역과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기 위해 정보해야 했던 땅이고 가장 방어적으로 갖춰져 있던 땅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있던 리블라에 이 이원들을 데리고 광에게 보여줍니다.

 

4.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그 체포한 인원들을 모두 처형시킵니다.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많은 포로들을 데려갔는데요. 28절부터 그 수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이 통치한지 7년에는 3023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18년에는 832명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통치 23년에는 745명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포로로 잡아간 인원이 모두 4600명이었습니다.

 

5. 이 많은 인원이 숫자로 불립니다. 숫자로 불린다는 것은 인격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불린다는 것은 편리함이 목적이고 하나의 정보로만 이용되는 것입니다. 뉴스를 봐도 사고가 나면 사망 몇 명 이렇게 공개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수가 필요한 바벨론은 많은 전리품들과 포로들을 데려다가 더 강한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인 두로, 수리아, 모압, 암몬을 다 점령하고 애굽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6. 포로들을 시켜서 바벨론의 성벽과 왕궁, 므로닥 신전을 건축하고, 대운하도 건설했습니다. 또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도 짓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함무라비 이후 바벨론 최고의 위대한 군주로 꼽힙니다. 그러나 그만큼 오만하기도 했습니다.

 

7. 유대 민담 중에 느부갓네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는 여러 시련을 겪은 끝에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려고 두 손을 모았는데, 천사가 와서 그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느부갓네살왕은 천사에게 화를 내면서 왜 그러냐고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너는 왕관을 쓴 채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습니다.

 

8. 그만큼 느부갓네살 왕이 끝까지 오만했다는 민담이겠죠. 다니엘서에도 나오는 것처럼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높이지만 또 다시 교만해지는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오만하고 잔혹한 세상을 다 가진 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를 잇습니다. 에윌 므로닥입니다.

 

9. 에윌 므로닥은 조금 호의적이고 후한 정치를 하는 왕이었습니다. 유다왕이었던 여호야긴을 석방시켜줍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왔던 여호야긴은 그동안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간지 37년만에 특사로 석방됩니다. 느부갓네살왕을 이어 왕이 된 에윌 므로닥이 첫 해 1225일에 특사를 베풀어서 옥에서 석방됩니다.

 

10. 그리고 31절에 머리를 들어주었고가 나오는데요. 머리를 들어주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시편 3:3에 보면요.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머리를 든다는 것은 존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풀이 죽은 거잖아요. 침울한 상태입니다. 또 머리에 대한 표현으로 머리를 흔들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 22:7에 보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빗대어서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

 

이렇게 머리를 흔든다는 것은 조롱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머리를 흔들면서 남을 비웃는 거지만요.

 

11. 이처럼 머리는 중요한 인격의 부분입니다. 에윌 므로닥이 여호야긴의 머리를 들었다는 것은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여호야긴의 수치를 벗기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12. 그리고 32절에 보면요.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접하여 주면서 여호야긴과 함께 바빌로니아에 있는 다른 민족의 왕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긴은 죄수복을 벗고 남은 생애 동안 늘 왕과 한 상에서 먹었습니다.

 

13. 숫자로 불리던 죄수에서 한 인간으로, 그것도 한 민족의 왕으로 존중을 받는 겁니다. 숫자로 불리는 죄수는 인격이 없습니다. 편의상 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번호를 벗고 죄수복을 벗고 왕으로써 대접을 받습니다.

 

14. 에윌 므로닥이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 의도라고 할지라도 모두에게 좋은 상황입니다. 에윌 므로닥이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이방 민족들을 호의적인 정치로 다스리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그것 또한 바벨론과 유다에게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윌 므로닥이 여호야긴 왕에게 왕으로서 대우를 해줬다는 것은 유다 백성에게도 좋은 의미입니다. 왕에게만 잘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벨론에서 유다 땅까지 좋은 분위기와 평화적인 정책으로 흘러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5. 이것이 예레미야의 끝에서 시작된 희망입니다. 유다는 망했고 성전도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이 마지막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회복과 희망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될 희망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비록 악한 왕이었던 여호야긴이지만 하나님은 그 악한 왕을 통해서도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16.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과 삼촌 여호아하스, 시드기야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레미야의 말대로 유다가 망하고 자신도 포로로 끌려온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요시야 왕을 따라 이제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회개하며 깨달았을 것입니다.

 

17. 그래서 저는 예레미야 끝부분을 보면서 여호야긴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느꼈고요. 시편 23편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어 보이죠? 예루살렘의 멸망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안전한 느낌을 받는 시편 23편을 떠올린다는 것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자고디는 가장 평안한 마릈과 여호야긴의 상황이 어떻게 겹치는지 보겠습니다. 시편 23편은 우리가 푸른 초장을 떠올리지만 사실 시편 23편을 기록한 상황은 그다지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1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에서 다윗은 정말로 부족함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상황은 바닥이지만 주님께서 내 목자가 되어주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니 나는 든든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19. 상황이 좋아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 한 분 의지함으로 감사하는 기대와 믿음의 노래입니다. 아주 캄캄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 말씀이 여호야긴의 상황과 비슷한데요.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20. 저는 예전이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신다는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제가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느 원수가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원수를 앞에 두고 저는 맛있는 잔칫상을 먹는 겁니다. 승리의 잔칫상을 즐기는 겁니다.

 

21. 그러면 굉장히 기세가 상승한 느낌이 들겠쬬? 적군을 앞에 두고 완전히 수치를 주면서 승리의 만찬을 즐기는 겁니다. 내 적의 우두머리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파티를 즐기는 겁니다. 기분이 하늘을 찌르겠죠?

 

22.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상황입니다. 내 상황은 다윗처럼 도망자 신세이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사울 앞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상을 차리시고 너는 왕이야라고 기름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23. 암담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갑자기 잔칫상을 베푸시고 왕으로 존대해 주는 겁니다. 여호야긴의 상황과 비슷하죠? 이 시편을 여호야긴의 고백으로 봐도 너무 와닿습니다. 시편 23편을 여호야긴의 고백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의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24. 그리고 6절에서 이제 여호야긴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할 날을 꿈꿉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리라그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여호야긴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겠습니다.”

 

25. 여호야긴의 마음으로 느껴지시나요? 여호야긴은 죽을 때까지 왕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였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지만 하나님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여호야긴에게 호의를 베푸시고 친절하게 대접하십니다. 그리고 유다의 희망과 회복을 시작하십니다.

 

찬양: <주 은혜임을>

 

26. 오늘 우리도 여호야긴과 같은 마음을 느끼시는 분이 계신가요? 우리가 여호야긴의 은혜를 함께 누리기 원합니다.

 

여호야긴의 고개를 들어주신 은혜, 감옥에서 석방시키신 은혜

친절하게 대하시는 은혜, 높은 자리를 주시는 은혜

죄수복을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히신 은혜, 왕과 한 상에서 먹는 은혜

다시 희망을 주시는 은혜, 일생동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누리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심을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게 하옵소서. 희망을 남겨놓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기도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주님의 집에서 주님과 영원히 사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나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다시 세워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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