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1-13
‘금강석’은 천연광물 중에서 가장 굳기가 우수하고 광채가 뛰어난 보석입니다. 영어로는 Diamond 라고 해요. 이 다이아몬드는 그리스어로 ‘부스러지지 않는’을 뜻하는 adamas에서 유래했습니다. 광물 중에 가장 강한 광물입니다. 그래서 어떤 물질을 뚫고 갈아 내는 데 사용합니다. 보석으로 사용하는 것은 일부이고 보통 공업용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금강석은 기원전 12세기부터 발견되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시대인 기원전 600년에도 거칠었겠지만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가장 강한 광물인 금강석으로 만든 철필, 금강석 펜으로 유다의 죄를 기록하십니다. 어디에 새기냐면요. 그들의 마음 판에 죄를 새기십니다. 도저히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연필로도 안 되고, 칼로도 새겨지지 않는 그들의 딱딱한 마음, 닫힌 마음에 하나님께서 금강석 끝 철필로 죄를 기록하십니다.
‘너희가 도무지 내 말을 새기지 않는구나’ 그래서 가장 강한 광물로 마음 판에 똑똑히, 또박또박 새기십니다.
또한 제단 뿔에 새깁니다. 제단 뿔은 제단에 네 모서리, 네 귀퉁이에 뛰어나온 부분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이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하고요. 또한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바르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이 제단 뿔에도 너희 죄가 금강석 철필로 새겨졌다는 것은 ‘짐승의 피로도 너희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짐승을 죽여 너희가 제사를 드릴지라도 너희 죄가 지워지지 않고 제단 뿔에 남아 있다는 소름 돋는 상징입니다.
그렇겠죠? 자신의 죄를 깨끗이 하려고 짐승을 죽여 제사를 드리는데 제사를 드릴 때마다 내 죄가 제단 뿔에 새겨져 있으면, 게다가 거룩하게 하려고 피를 바르는데 피를 바르면 더 선명하게 내 죄가 보입니다. 이것은 아주 수치스럽고 섬뜩한 상황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는 상수리나무를 뜻합니다. 상수리나무는 구약시대에 특별한 나무였습니다. ‘엘론’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대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 상수리나무 아래였습니다. 야곱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복을 주셨던 장소가 상수리나무 아래였습니다. 또 곳곳에서 등장하는데요. 이처럼 상수리나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제단을 쌓을 때 항상 상수리나무도 같이 심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푸르른 나무와 높은 언덕은 아세라 신을 숭배하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세라는 ‘행운’이라는 뜻을 가졌는데요. 고대 근동의 여신 이름입니다. 페니키아와 수리아에서 가나안 땅으로까지 들어와서 토착화되고, 다산과 풍요의 여신입니다. 그런데 아세라 신을 위한 제의는 성적으로 음란한 의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우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서 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타락이 남아 있었습니다. 작은 산당마다 우상숭배로 바뀌게 되고 모든 제단은 음란과 부패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타락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불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을 열 받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 다음 6절을 보겠습니다. ‘떨기나무’가 나와요. ‘떨기’는 덥수룩하게 된 걸 말합니다. 무더기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떨기나무는 사실 상당히 볼품없는 나무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떨기나무 때문에 거룩하고 굉장한 나무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개나리나 아카시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덥수룩하게 축 처진 나무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도 ‘연약하다’는 뜻입니다. 주로 광야에서 자라는데요. 그래서 고독과 소외, 광야의 생활과 환란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유다 공동체를 향해서 ‘너희가 떨기나무처럼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눈 앞이 가리워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간조한 곳에 살 것이고 건건한 땅 즉,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광야에서 살게 될 것이다. 소금 땅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땅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에서는 (47:11) 소금 땅을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부르고요. 남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쓸모 없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건건한 땅은 땅에 소금기가 있다는 것인데요. 땅에 소금기가 있다는 것은 저주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헌을 보면 주전 2000년경에 이라크 지역의 토양이 점차 소금기를 띠게 되었다는 묘사가 많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염도가 일정수준으로 올라가면 농사를 못짓게 되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세기동안 버려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유다 백성을 향해 불을 일으키셨고, 메마르게 하시며 짜서 목이 타게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버려진 땅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의 말씀은 남겨두세요.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냐면 8절 말씀처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슷한 말씀이 떠오르죠? 시편 1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1편 3절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나무가 시냇가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우리의 근원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나무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3절 말씀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자가 아닌 바라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9절을 보겠습니다. 잠시 희망의 말씀을 하시더니 또 다시 유다의 죄를 말씀하십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수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으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와 부패는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고 우리가 지켜야할 것,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뭐가 있냐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대해서 더 이어서 살펴보면요. 10절에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나갈 때, 또는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순수한 목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이득을 바라거나, 계산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사람을 이용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해줄 때도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요.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기도 하고요.
돈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하고요. 나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늘의 가치가 아닌 땅의 것을 이루고자 신앙 생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이것들이 모두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이죠.
야고보서 1장에서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 마음을 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뜻을 가지고 하늘의 뜻을 이루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나의 뜻과 이 땅에서의 목표들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고 두 마음을 품은 양다리 걸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이루고자 기도하고 소원을 이루고자 기도하지만 사실 우리의 기도는 점차 이러한 것들을 버리게 되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겠노라, 하나님만을 갈망하겠노라 구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것들을 구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아세라 목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는 과정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장을 감찰하시며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수단과 과정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계산적 태도, 뒤에서 꾸미는 모략들, 이러한 사람의 순수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속을 다 살펴보십니다. 우리의 심장까지 감찰하십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자를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갚으십니다.
반대로 정직한 자와 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다고 하시는데요. 자고새는 이스라엘 사해 부근에서 많이 서식합니다. 자고새는 알을 많이 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다른 새의 알을 훔쳐다가 품는 습성이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는데요.
다만 한 배에 산란수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고 합니다. 어쨌든 예레미야는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들은 계획이 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열심히 알을 품고 부화시켰지만 새끼가 자란 뒤 둥지를 떠나버리는 것처럼 모든 노력이 헛되고 종말에 가서 허망한 결과를 얻는 다는 메시지입니다.
마지막으로 13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흙에 기록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흙에 이름을 쓰면 금방 없어집니다. 파도가 오면 금방 사라지고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밟아도 지워집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헛된 노력들은 땅에 있는 흙에 기록한 것처럼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두 번째 의미는 하늘이 아닌 무덤에 기록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서도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기록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책,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이고 흙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망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음부의 무덤에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모두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금 땅이 아닌 시냇 가에 심겨지기를 바랍니다. 순전하게 우리의 마음을 더 높은 가치에 두고 우리의 마음을 그 하늘의 가치로 채우기를 즐거워하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물을 마시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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