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살로니가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요. 데살로니가서는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인데요. 남유럽 지역입니다. 이 마케도니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예수께서 떠나신 지 20년도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성경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는 주후 50년경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기독공동체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아마 데살로니가에서 선교를 하고 떠난 지도 얼마 안 되었을 것입니다.
2. 그래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데살로니가 지역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애틋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가기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고 도망쳐서 데살로니가까지 가서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던 이야기, 그리고 데살로니가 지역에 가서도 바울의 대적자들에 의해, 또는 예수를 구원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유대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크구요. 그러한 적대자들로부터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내고, 로마 사회에서 황제숭배가 아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3. 유대공동체는 어느 지역을 가든지 회당을 세우고 모이는 자들인데요. 바울은 그 유대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과 함께 교회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고, 유대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복음의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4. 그런데 그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를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고 대적자들에 의해 쫓겨났기 때문에 바울은 굉장히 안타까워합니다. 얼마 있지도 못하고, 제대로 이들에게 복음을 잘 가르치고 양육하지 못해서 이들이 이 험난한 시대 가운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내가 원래 아시아로 가려고 했다가 유럽으로 온 것인데, 이것이 잘못된 선택인 것일까? 이렇게 핍박을 받고보니 정말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대해 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5.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데살로니가 공동체가 참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6. 이처럼 이들이 전에 너희에게 가서 복음을 가르치고 온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희가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참 감사하다. 너희도 그렇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7. 이 말씀은 바울과 실루아노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기 전에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힌 이야기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16:19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공적으로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았습니다. 능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2절 말씀처럼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너희에게 전했다. 고난과 능욕을 당해서 의기소침해졌다가 아니라 더 힘을 얻어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다. 라는 것입니다.
8. 이게 참 신기한 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말 그대로 고난과 능욕이 따라오는 일입니다. 힘들구요. 부끄러움이 따라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상대방이 거부하면 얼마나 민망하고 기분이 나쁜가요? 마스크 받으라는데 거절하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그런데도 그 복음을 전하는 행위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다른 기쁨을 주십니다.
9. 물론 요즘의 전도 방식이 참 다양하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할 때에도 우리 안에 생겨나는 충족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안 그런가요? 목사님도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행할 때까지는 어렵고 부끄럽지만 행했을 때 오는 만족과 평강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죠.
10. 특별히 어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더 기쁨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조금 어렵죠. 많은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고 어르신들 아니면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경계하고 인상쓰고 ‘됐습니다~’하고 지나가죠.
11.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면 공을 많이 들여야 되고 생각도 많이 해야 되고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해야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많은 힘을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12. 그래서 여러분들이 너무나 필요하고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늘 세상에 계시는 분들이잖아요. 항상 안전하게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고,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전도자들이죠. 저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선교사님과 같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13. 저보다 더 만나는 사람들이 많구요. 더 현장에서 전투를 벌이셔야 하는 분들이 성도들 즉, 여러분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직장으로 가면 더 그렇구요. 가정으로 들어가면 더더더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우리의 모습들, 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믿는 자로서의 모습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14. 그래서 여러분들의 관계속에서 항상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믿음이 생기기를 바라는 한 사람을 위해 관계하고 사랑을 행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언가 자꾸 결과를 얻어내려고 하고 혹은 전도하지 못해서 자책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애쓰고 계신 분들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말과 행동으로 여러 노력들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16.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17. 우리는 사람들에게 평가 받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 헤아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8. 우리는 보통 열매라고 한다면 어떤 결과물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데리고 와서 등록 시키는 것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해서 응답 받은 것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19.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과 마음은 어떻게 나타나나요?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그 결과는 어떠한 모습인가요? 갈라디아서 5장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우리의 모둠의 이름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20. 우리가 사랑을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인해 나타나는 믿는 자의 열매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향해 오래 참고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인한 열매입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힘이 성령으로 인해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환호해야 할 일이지만
22. 그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믿음이 생기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섬기고 있다면,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위해 사랑의 수고를 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피어난 열매입니다. 그 열매로 인해 하나님은 웃으십니다.
23.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 동료가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제가 아는 언니가 교회 다니면 너무 좋겠어요. 기도하고 있어요. 옆집 사는 이웃에게 먹을 것도 갖다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섬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어렵지만 우리 집에 있는 남자들 예수님 믿고 정신차리도록 제 속이 다 타들어가고 있어요. 제가 믿는 사람이라 참아요. 안 그랬으면 이렇게 안 살아요.
24. 이런 우리의 행함과 마음 씀과 기도, 헌신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이자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며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보시고 좋아하시죠. 그러니까 우리가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부족한가봐요’라는 자책은 너무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5.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실 때, “너 몇 명 전도했니?”를 물어보시지는 않겠죠?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겠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물어보실까요? ‘네가 얼마나 사랑했니?, 네가 얼마나 기뻐했니?’를 물어보실 겁니다. 우리가 시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시험을 잘 보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겠죠?
26. 이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자신들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말합니다. 7절에 보니까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 마치 어머니처럼 너희를 길러냈다. 또한 9절에 보니까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라고 말합니다.
27.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서 생계비와 선교비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돈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벌어서 오히려 생계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너희를 위해 헌신했다.
28. 또한 11절에 보니까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그리고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29.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가장 최고치의 사랑이죠.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할 사람이 있는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에 있는 사랑의 절정일 것입니다.
30. 예전에 제가 군대 있을 때 동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동기가 힘이 돼죠. 배우가 꿈이라면서 매일 하정우를 따라하던 친구였습니다. 전역을 하고 몇 개월 뒤에 그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밤이었는데요. 그 친구의 목소리는 눈물과 떨림이 있었습니다.
31. 제대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생이 백혈병으로 위기에 있다. 내가 아무리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그냥 너에게 부탁해본다. 너가 믿는 신이 있다면 내 동생을 위해 기도 좀 해줘라. ”
32.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제가 해결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친구에게 다 나을거니까 걱정말라는 위로의 말만 해줬습니다. 하나님이 낫게 해줄거라는 확신있는 척하는 제 말만 전달했습니다.
33. 전화를 끊고나서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겠죠. 엄청난 부담감이 제게 몰려왔습니다. 저 동생이 꼭 살아야 하는데, 저 친구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도,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진 모든 복을 가져가서라도 저 동생을 살려 주십시오. 제가 앞으로 받을 복도 모두 저 동생에게 부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가 나왔습니다.
34. 진짜로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저는 모든 책임감에 눌려 있었습니다. 꼭 살려야 된다. 마치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 지우고 백성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한 것과 같은 기도였습니다.
35. 그 기도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감히 잘 나오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건에 그렇게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필터링 해주시기 바랍니다.
36. 바울도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37.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와 영광을 소망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자기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우리도 그 나라와 영광을 위해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마치 자녀를 기름같이,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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