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4절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라고 표현하면서 므비보셋이 사울의 손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냥 므비보셋도 아니고 사울의 집안임을 강조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라는 그 왕족 출신임을 강조하며 이 므비보셋이 본래 왕족 출신이며 왕이 될 인물이었음을 말합니다.
2. 므비보셋은 사울이 죽고나서 도망가려다가 유모가 떨어뜨려 다리를 다친 사람이죠. 장애인입니다. 그랬다가 다윗이 친구인 요나단의 약속을 따라 므비보셋을 거두어서 보살핍니다. 므비보셋은 몰락한 왕족으로서 숨어지냈지만 다윗은 수소문해서 므비보셋을 찾아내 죽이지 않고 잘 보살펴 줍니다. 정치적인 의미든 순수함이든 다윗은 자신의 적의 세력을 품고 함께 살아갑니다.
3. 그런데 므비보셋의 종인 시바가 다윗이 도망갔을 때 찾아와 므비보셋을 고자질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쫓겨난 틈을 타서 왕이 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간질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재산과 땅을 다 줍니다.
4.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윗이 압살롬을 이기고 나서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했을 때 므비보셋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저는 다리로 다윗을 맞이합니다. “왕이시여 저는 왕께서 떠난 날부터 오늘까지 발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ᄈᆞᆯ지 않았습니다. ”
5. 조금 더럽긴 합니다. 발을 맵시 내지 아니했다라는 말은 발톱을 깎지 않았다는 뜻이거나 발을 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은 다윗이 패배한 것을 애도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도망갔을 때 자신도 따라서 가려고 했지만 시바가 나를 버리고 떠났으며 왕께 자신을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6.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바의 말이 사실인지, 므비보셋의 말이 사실인지, 므비보셋이 왕이 되기를 기대했는지, 아니면 다윗이 오기만을 애도하며 기다렸는지 성경은 명확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 방향이 므비보셋의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므비보셋의 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7.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말합니다. 판단은 왕께서 해주옵소서. 저를 죽이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왕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어왔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더 이상 왕께 살려달라고 요구할 존재가 못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다윗도 명확한 판결을 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시바와 반을 나누라는 것을 보니까 마치 솔로몬이 한 아이를 두고 싸우는 여인에게 반으로 갈라 가지라고 한 것처럼 다윗은 긴가민가 한 것 같습니다.
8. 그때 므비보셋은 땅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 땅은 모두 시바가 가져도 됩니다. 알아서 하라고 하십시오. 저는 필요 없습니다. 왕께서 평안히 오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9. 성경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항상 명확한 답을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들도 정답을 정확하게 말하며 기록하지 않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을 요구하기도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판단할 수 있게 하고 생각을 열어두어서 조금 더 풍성하고 넓은 양식을 먹을 수 있게 합니다.
10. 그러나 조금은 므비보셋 쪽으로 향하는 것 같죠.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은둔자의 삶에서 왕과 함께 생활하며 은혜를 누린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므비보셋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왕이 될 욕심이 있었을까요? 사실 그것도 단정짓는 것은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므비보셋도 왕이 되면 좋았겠죠.
11. 또한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어제 나눴던 바르실래 이야기도 나오고 다윗을 저주했지만 용서를 구하고 다윗도 용서해주었던 시므이의 이야기를 본다면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윗의 자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용서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가는지 볼 수 있는 대목들입니다.
12. 그런데요.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성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서로 관계가 틀어지고 친밀했던 사이가 멀어졌을 때 우리는 보통 회복하기를 두려워하고 풀기를 주저합니다. 용기도 없고 나 자신도 화가 있고, 억울함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해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관계를 회복하고자 용기를 냈을 때 잘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13. 저도 예전에 관계가 틀어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만나서 이야기 하기는 민망하고 그럴 때 편지를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편지에 진심을 담아서 미안함을 말하고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진심은 말한다는 의미의 편지를 썼습니다.
14. 그랬더니 그 관계가 풀리는 값진 일이 있었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편지라는 진심과 정성이 통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성은 힘이 있습니다. 므비보셋도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진심을 말했고, 죽어도 괜찮습니다. 왕이 돌아오셨으니 됐습니다. 로 만족합니다.
15. 오늘 우리도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그 일을 풀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자질과 왜곡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진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무시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16. 하나님과 내가 아는 사실로 만족할 수 있고, 나의 진정성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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