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14-30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에 대해 가장 상세히 설명하는 곳은 누가복음 4장 16-31절입니다. 태어날 때와 소년시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요. 사역을 시작하실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살부터 30살이 될 때까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 나이에는 나사렛에 살면서 낮에는 목수, 건축자로 고용되어 일하시고 밤에는 그 지역의 haberim과 어울려 율법 토론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haberim은 ‘친구들’이라는 뜻이며 예수 시대에 여러 마을에서 나타난 평신도 운동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나 구약성서를 배우던 유대인들은 함께 모여 공부하고 그 말씀을 일상에 적용하려고 애썼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일도 열심히 하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토론하는 일에도 누구보다 열심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 공부를 하셨을 것입니다. 12살에도 엄마 아빠가 잃어버릴 정도로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으니까요. 예수님은 랍비들과 친구들을 통해 말씀을 익히고 배우고 토론의 실력도 늘어갔습니다.
18년동안 신학교육을 받으신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가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광야에서의 40일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갈릴리는 북쪽 지역에 더 큰 범위의 분류이고요. 갈릴리 안에 나사렛과 가버나움 등 작은 마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별안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와 그 지역에서 열린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당시에는 예배 인도자가 회중 가운데 훌륭한 사람을 지목해서 성경을 읽게 하고 그 부분을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사도행전 13:15에서 바울과 바나바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권면의 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사환으로부터 이사야서를 받습니다. 이사야서를 받으시고 한 본문을 골라 회중에게 읽어주셨습니다. 자리에 일어서서 이사야서 61장을 펴시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8-19절)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의 영이 내리셨다라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내가 메시야다
그리고 예수님은 61장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고요. 58장과 42장과 49장등을 하나씩 가져와서 읽으십니다. 성경을 잘 외우고 계신거죠. 그런데 61장 2절에 보면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보복의 날’을 읽지 않으십니다. 은혜의 날과 보복의 날을 선포하시는게 아니라 은혜의 날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중들은 놀랐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말을 하는데요.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요.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봐야합니다. 먼저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가 어렸을 때부터 알지. 요셉 아들이잖아. 그런데 요셉 아들이 이렇게 똑똑하고 훌륭한지는 몰랐네. 회당에서 히브리어를 이렇게 줄줄 알다니. 이 친구가 아주 대견하구만“이라는 의미입니다. 케네스 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p.
그런데 반대로 나쁜 의미로 해석한다면 어떤 말인가요?
‘이 젊은이가 여기서 자라지 않았나? 그런데도 우리가 이 본문을 어떻게 느끼며 이해하는지 모른단 말인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회중들이 화 낸 이유가 “우리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날”을 빠뜨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보복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핸 보복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에게 복수하셔서 우리들을 잘 살게 하시고 이사야서 61장 5절 말씀처럼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다.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나사렛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강해져서 이방 나라들을 이기고 이방 나라들은 자신들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방인들을 향한 복수를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이방인들은 보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당황한 것입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 저 예수는 이방인인가? 우리 편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민족중심주의와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나사렛이란 동네는 구약성경에도 나오지 않을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만 거주하는 마을이었지만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 성전에서 온 제사장중의 한 반열이 피난민이 되어 나사렛에 정착했습니다. 온통 유대인만 살고 보수성이 강한 동네였습니다.
식민생활을 하는 민족이 생각하는 당연한 꿈이지만 나사렛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그 보복을 꿈꾸지 않으십니다. 예수의 꿈은 보복에 있지 않고 모두에게 확장되는 은혜에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에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꿈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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