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8 새벽설교
롬12:3-8 찬송가 220장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윤리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윤리를 주셧는데요. 그 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윤리의 전제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지키는 선한 것들인데요. 이 윤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윤리의 기본 전제에 하나님이 계셔야 사람들 사이에 질서와 기준을 지킬 수 있습니다.
3절에서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윤리적 실천으로 높아지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함을 깨닫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높여져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높아지려고 할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높여 주십니다. 우리가 높은 곳에 마음두지 않고 각자의 분량대로 생각할 때 자신의 낮음을 깨닫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때 우리를 높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칭찬을 받으며 교회를 세워갑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는 늘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자 역할에 따라 맡은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모두 이웃입니다. 상대방이 나랑 잘 맞아서 이웃인게 아니고요. 다르기 때문에 이웃입니다. 똑같다면 나 자신이라고 불러야겠죠. 다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똑같기 때문에 이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입니다.
그래서 성도 한 사람은 부분이지만 전체를 말합니다. 우리 한 사람이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성도 한 사람은 다른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말합니다. 성도 한 사람이 곧 공동체 자체이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당신은 나와 다르니 우리 공동체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성도의 공동체는 라틴어로 'Communit-sanctrorum'이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어야 성도의 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들의 친교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도 제약하고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모두가 동등하며 한 몸으로써 서 있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알고 각자의 분량으로 자신의 역할을 함으로 하나가 됩니다. 조화를 이룹니다. 누구도 높은 위치에 앉을 수 없으며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하나됨을 이룹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품대로 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안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은사는 카리스마라고 하고요. 은혜는 카리스라고 합니다. 카리스는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카리스마는 헌신을 말합니다. 받은 것을 사용하는 실천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카리스마 있는 사람은 받은 은사를 헌신적으로 합당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것은 권위인데요. 그 권위는 두려움이 아닌 자신의 분량을 헌신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옵니다. 오히려 권위를 보이려고 하는 사람에게서는 카리스마가 나오지 않고 피하고 싶은 마음만 듭니다. 자신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은사를 헌신적으로 사용함으로 성도의 공동체를 세워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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