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3-34
찬송가 442장
요한복음 5장에 이어 안식일이 다시 논쟁의 이슈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다가 나음을 받음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갑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를 심문하자 치유 받은 사람은 어찌된 일인지 쭉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놀라운 일을 겪었다고 설명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보기보다 무슨 요일에 했는지를 따집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안식일에 고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바리새인은 말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반문합니다. 이렇게 서로 논쟁도 있습니다. 의견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이제 바리새인들이 시각장애인에게 묻습니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대답합니다. '그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라고 불러요. 육의 눈만 떠진 게 아니라 믿음의 눈도 떠집니다. 처음에는 맹인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예수라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나를 고쳐줬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선지자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믿음의 발전이 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27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이제는 왜 내 말을 믿지 않냐며 바리새인을 향해 따지듯 묻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예수님의 제자인듯 말합니다. '당신들도 나처럼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맹인을 제자처럼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말이 등장합니다. 28절입니다.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맹인이었던 사람이 제자에 속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 눈으로 보기에 제자처럼 여겨졌나 봅니다. 그래서 그와 선을 그으며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며 무시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우리는 그 모세의 제자다. 그러나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전통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자 눈을 뜬 사람이 말합니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줬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인정합니다. 점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8절에서는 이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합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처음에는 '예수라고 하는 사람', '선지자', '제자',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형식 안에서 갇혀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종교적 모습은 가득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도 종교화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보는 영성을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믿음이 점점 깊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밖에서 바라보는 자가 아닌 예수님을 내 안으로 모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중심에 두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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