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을 통하여 유다에 알려지셨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사건과 구원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났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기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2절에서는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여기서 살렘은 평화와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의 장막이 평화에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장막이라는 장소에 있기보다 그가 행하신 평화가 하나님의 장막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중요합니까 장막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평화가 중요하죠. 장막만 있고 하나님의 평화가 없으면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 하나님의 구원이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껍데기만 구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모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양과 형식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본질을 항상 잃지 않고 그 본질을 가지고 모양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행함과 열심히 하는 것들이 비본질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성전에 계신가요? 하늘에 계신가요?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 하늘은 저 위에 있는 하늘 우리와 아주 먼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곳 조차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곳을 망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를 찾는 그곳에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하는 그곳, 바로 하나님의 평화이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3절에 보면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을 전쟁을 없이 하셨도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하나님 앞에 이 모든 무기들은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최신 무기가 들려있나요? 남을 이길만한 강한 무기를 가지고 계신가요?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계신가요?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그것, 그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잠들 것이고, 빼앗길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를 공격하려는 모든 무기들도 하나님 앞에 빼앗기고 잠들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들이 있나요? 무서운 것들이 있나요? 오늘도 우리가 살아갈 때 찾아올 칼과 화살들이 있나요? 전쟁과 같은 일을 앞두고 있나요?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빼앗기고 잠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내 앞에 있는 모든 무기들 적군들 다 잠들게 하여 주옵소서.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가 뭔가요? 오늘 하루 승리하기 위함 아닌가요? 매일매일 기도하는 이유 다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적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 입어서 패배하지 않도록, 세상에게 지지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저도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이 참 힘이 됩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니까요. 내가 하면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사실 우리 안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문제보다도 내 앞에 찾아온 큰 문제거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문제이고 내 자신의 문제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 것인지 악을 선택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는 판단력이 잘 안 생길 수 있죠. 우리가 잘못된 분노를 하는 것도, 타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남과 비교하는 것도 다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으로 찾아오는 생각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릇된 생각들, 다른 사람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들 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문제들입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가 이겨내도 하나님의 살렘 즉 샬롬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어제도 학생부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관계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친한 친구가 있는데 평이 안 좋은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친해져서 친구를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죠. 우리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해져서 내 옆자리가 비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와 싸울수도 없고, 다시 놀아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고, 참 속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좀 살다보니까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어가고 또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그런 만남과 멀어짐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인간관계가 우리 삶에 참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우리가 다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니까요. 그러나 내가 좋은 친구라면 우리에게는 또 다시 좋은 친구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제가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 왔어도 이렇게 좋은 성도님들을 또 만나게 하십니다.
좋은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이 또한 우리가 이겨낼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방법입니다. 내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또 사람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강해져가고 극복하는 훈련이 되어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이 쌓아 가구요. 하나님 외에는 완전한 우리의 편도 없고 우리를 이해하실 분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쌓아가시길 바랍니다. 남을 욕하지도 말구요. 평가하지도 말고 판단하기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자극적인 것을 따라가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에 매혹됩니다. 부정적인 것은 우리 뇌를 자극시키는 것이니까 우리는 자꾸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을 따라갑니다. 음식의 간이 안 되어 있으면 간을 많이 하는 것처럼 우리는 맵고 짜고 단것들을 자꾸 따라갑니다. 그것을 멈춰야 합니다. 건강해 지기 위해서는 간을 줄여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살렘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것들을 따라가기보다 멈추고 거절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야겠다. 나는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려야겠다. 라는 용기와 강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도 오늘 새벽 기도시간을 통하여 모든 높아진 것을 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 앞에 복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9절 말씀에 보면요.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라고 나옵니다. 온유는 항상 땅과 같이 나오죠. ‘온유’하다는 것은 단순히 착하고 부드럽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산상수훈에도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나오는데요.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위스라고 하는데요. 이는 훈련된 것을 의미합니다. 길들여져서 충성하는 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하면 충성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내성적인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구요.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비록 본성은 거칠고 급하고 인내심이 없더라도 그리스도로부터 훈련되고 변화되어서 충성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품은 다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길들여지고 깍여지고 훈련되어서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갑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합니다. 아직 연약하구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샬롬으로 만들기 위해 다듬고 훈련 받고 악으로부터 오는 것들을 모두 거절하고 멈추어설 수 있는 충성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의 가치들, 자극적인 가치들로부터 길들여져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지고, 타인들에게도 그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제련되어서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충성으로, 샬롬으로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마지막 12절에 보면 그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존재를 꺾으시고 두려운 존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악들이 우리를 쉽게보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악한 것들이 우리를 두렵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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