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7
심리학 용어에 정적 강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표행동이 나타난 이후 특정한 후속자극을 제공함으로써 그 행동의 발생률, 강도 혹은 지속시간을 증가시키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이의 양치질에 문제가 있으면 양치질이 안 된 서른 한 개의 이빨이 아니라 양치질이 잘 된 한 개 이빨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가 지리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면, 한 시간도 못 앉아 있느냐고 잔소리하는 게 아니라 10분 공부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는 방법입니다.
아이가 어떤 친구에게 말을 거칠게 한다면 처음으로 친절하게 말할 때 그것을 알아봐주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유익한 행동에 주목하고 아이의 선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아기도 자기 안의 반짝이는 빛을 보게 됩니다. 선한 의지로부터 동기부여를 시켜야 합니다. 가혹한 방식으로 동기부여가 되어서는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아이를 선한 목표를 두고 긍정으로 양육해야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가르칠 때 혼내면서 많이 가르치죠. 그렇지 않기가 힘듭니다. 저도 제가 화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요. 아들이 셋이 되다보니까 제 안의 원죄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도 내고 큰 소리도 치고 벌도 세우고 하지만요. 그것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해야될 것은 칭찬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화내지 말라는 말과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우리가 화도내고 하지만 그것에 몇 배로 우리는 축복의 말과 칭찬을 더 많이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내는 것은 쉽고, 가장 빠른 방법이고 많이 사용합니다. 그럴수록 더 자녀들에게 긍정의 말과 칭찬과 축복의 말을 많이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자녀를 상처주지 않고 건강한 자아와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훈육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겠죠? 당연한 것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밥을 먹을 때 ‘밥을 먹으니 뿌듯하구나’라든지, ‘살아있으니 감사하구나’, ‘아빠는 네가 있어서 행복해’,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구나 고생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톡으로 안부를 물을 때 ‘오늘도 일하느라 고생했다 늘 응원한다’, 취업준비하느라 고생많은데 아빠는 응원한다.’ 이런 당연하면서 진부한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 자녀의 마음을 채우고 공기를 들이마시듯 마음이 건강해질 것입니다. 셰팔리 하라리의 <깨어있는 부모>에서는 ‘깨어있는 부모는 이 모든 것에서 신성함을 발견한다.’라고 말합니다. 평범하고 당연한 것을 긍정적으로 칭찬하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볼까요? ‘당연한 것을 칭찬하자’
어른아이
이것은 어린 아이에게 적용하는 심리학 방법이지만 성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 성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자아는 성인이 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나이가 들었고, 몸도 다 컸지만 사람의 내면은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육체만 컸다고 해서 어른이 아니라 내면이 성숙해야 어른이겠죠.
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또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을 사전에서는 어른이라고 합니다. 제가 결혼을 했지만 ‘어른’이라고 하는 것에 어색합니다. 내가 어른인가라는 물음에 저는 아직 어른 같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저는 어른처럼 보이겠지만 제가 보는 저는 제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어른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니까 요즘 시대에 결혼한 사람은 저처럼 뭔가 부족한 사람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잘난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한 사람은 어른으로 대우 받습니다. 결혼도 안 한 사람은 아이로 봅니다. 그런데 결혼만 했다고 어른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없으면 인생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그만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아에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 철없는 생각,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 성숙하지 못한 어린 자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다 그런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어린 동익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받았던 상처, 어릴 때 채우지 못한 결핍들이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책임감 없이 행동하게 만들고요. 철없이 행동하게 만듭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 아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아에 자리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이냐면 긍정의 방법으로 먹이고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칭찬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어른입니다. 저보다 어른이 많으시죠. 그러나 성숙한 어른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고보면 다 어린 아이입니다. 철도 없고 부족한 어린 아이입니다. 저도 이 자리가 아니면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도 시어머니 아들을 키우는 분이 계시기도 합니다.
그런 어린 아이에게 우리는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기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옆에 있는 어린 아이에게 인사해볼까요? ‘아이야, 축복한다.’ 이렇게 인사하니까 다들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들이 어른처럼 보여도 다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대하고 칭찬하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칭찬에 너무 인색합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늘 집에가면 엄마가 잔소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혼내고, 때리기도 하고 그렇다는 겁니다. 엄마의 눈에 사춘기 초딩 자녀가 못마땅한 부분이 참 많겠죠.
오늘 중고등부 아이들과 운동을 했는데요. 한 친구에게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야 너는 운동도 잘하고 너무 멋지다. 멋진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정말 크게 될 거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저희 엄마는 저한테 그런 말 안 하던데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십니까?! 많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부모님과 통화하다보면, 주로 아이들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영상통화를 많이 하는데요. 아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재롱을 많이 부립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에게 손주들은 그저 예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걱정으로 대합니다. 그래서 늘 통화가 끝날 때는 ‘고생이 많다, 기도하고 있다.’ 이런 말로 마무리가 됩니다.
어린 아이이든, 청소년이든, 다 큰 성인이든 다 잔소리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자라게 됩니다. 반대로 그저 기도하면서 칭찬하고 응원하고 축복하면 자녀들은 지루해하는 것 같지만 다 듣고 속으로 좋아합니다. 우리가 잔소리만 할 줄 알아서 자녀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뺀 긍정의 말로 말하고, 기도하고, 축복한다면 자녀들은 어린 아이이든 성인이든 다 좋아하고 감사해 합니다.
예수 세례
하나님은 아들에게 사랑고백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음성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기쁨의 고백과 감동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곳곳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7:5 에서도 변화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계실 때에 ‘홀연히 빛나는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이렇게 제자들에게도 아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하십니다.
이사야 42:1 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하셨고 그것을 표현을 하셨습니다. 무뚝뚝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니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유다에게 복을 주십니다. 야곱이 넷째 아들 유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며 축복하는데요.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 같을 것이다.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창49:8
이렇게 유다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복을 받을만한 인물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동생 요셉을 애굽으로 팔았던 주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며느리와 동침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유다지파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거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그런 유다를 축복하시고 모든 형제들이 너를 찬송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못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들을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심령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어린 아이인 우리가 서로를 축복하고 축복받는 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상훈 목사, 윤정희 사모
강릉아산병원 원목으로 계시는 김상훈 목사님과 윤정희 사모님이 계십니다. 이 분들은 11명의 자녀를 입양했습니다. 인간극장과 휴먼다큐 사랑 등에 출연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정입니다. 그런데 입양한 아이들이 다 아픔과 질병이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기관지염, 언어장애, 지적장애, 안짱다리 등 하나님은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게 하셨고 그들을 가족으로 입양하게 하셨습니다.
이 두 부부는 ‘입양이 어렵고 성장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가정의 모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상처가 아물때까지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자녀들을 성장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8살에 만났을 때 아이큐가 64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서 자라 중학생이 되서 검사해보니 137이 나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아이도 80이였는데 100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녀가 아픔과 장애가 있었지만 사랑을 받으니 지적 능력까지 향상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부모가 사랑을 주는 것이 발달장애와 아픔이 있는 아이, 버려진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 자녀를 가장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어린 자녀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0대 청소년들을 응원하시기 바랍니다. 다 큰 성인 자녀들도 기도하시며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서로서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건강하고 지혜로운 가정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우리 모두가 축복하는 가정과 교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부정적인 말로 자녀와 주변 사람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긍정의 말로 자녀와 내 옆에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을 격려하고 축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찬송가 56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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