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11
고명재 시인의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에 보면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남의 말을 시라고 한다.
누가 혼잣말로 추워,라고 말해도
온갖 비평가들이 담요를 들고 곁으로 다가와
모닥불을 피우고 귀를 기울여준다고
이 시를 평론하는 성현아 평론가는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공들여 읽어주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려 하는 사람은 모두 평론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추위에 떠는 이의 혼잣말을 외로이 두지 않는 사람,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다독여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평론가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읽고 느끼고 사랑하는 일까지 모두 평론가의 일이라니,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라므이 아픔에 공감하고 들어주고 위로해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깊이 듣는 자세가 평론가의 일이듯이 우리도 그렇다면 모두다 '평론가'라는 것입니다.
평론가가 비판하고 고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깊이 듣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가요?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듣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평가하고 비난하는 사람인가요?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서 데리고 옵니다. 예수게 판결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돌로 쳐야 마땅하니 직접 심판해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 간음한 여인은 마치 구약시대 간음한 이스라엘과 똑같습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음녀 이스라엘,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적 결속인데 그것은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필요한 것이고 신랑과 신부 사이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오자 예수께서는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쓰셨을까 정말 궁금합니다. 예수께서 끄적끄적 생각하시며 시간을 끄시려고 쓰실수도 있고요. 또는 바리새인들의 죄를 기록했을수도 있습니다. 돌로 치려는 사람들의 죄를 다 적는 겁니다 그러면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도망갔겠죠?
그러나 무엇을 쓰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깊이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고 고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부터 시험을 해결할 방안을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그 방법은 죄를 고발하는 자의 편이 아닌 죄를 고백하는 자의 편에서 죄로부터 건져내는 일을 선택하십니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자의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 당하는 죄인의 편에 서서 그를 구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한척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만 지적하고 가르치려고 하고 고박하는 일에는 열심을 냅니다. 이런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겸손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간음한 여인처럼 죄가 있더라고 우리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느냐, 하나님께 고백하느냐가 차이점입니다. 간음한 여인처럼 부끄럽지만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고 '저도 죄인이에요, 연약해요, 힘들어요'
이렇게 하나님께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간음한 죄인이에요. 저는 연약해요.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함은 이 은혜에 있습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쓸모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받아들이심'이 하나님의 특별함을 보여주십니다. 그 특별함이 이 여인이 처한 상황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고발하고 정리하던 지도자들을 다 치우십니다.
"여자여 너를 고박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께서도 여인 앞에 서 계시지만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 한 사람을 그냥 죄인 취급하지 않으시고, 나쁜 평론가가 되지 않으시고 좋은 평론가가 되어서,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아픔을 듣고, 느끼고 깊이 보고, 한 사람이 하나의 멋진 작품이 되도록 다독여주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 갇혀있게 두지 않으시고 새롭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 은혜를 누리시는 하루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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