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새벽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다.

E.step 2024. 11.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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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옆구리를 꿰뚫는 창, 프라 안젤리코(1440년경)

금요일 정오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 3시간 후면 안식일이 시작되고 유월절이 시작됩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이니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영혼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시간은 유월절을 몇 시간 앞두고였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시체가 예루살렘 근처 산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하기 때문이겠죠. 신명기 21:22-23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게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렵혀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출애굽기 말씀처럼 유대 사람들은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 것을 부정하다고 여기며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해, 거룩함을 지키고, 구별되기 위해 말씀을 지킵니다.
 
종교화된 자들의 특징은 정죄를 잘하고, 더럽다고 스스로 여기는 것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잘 지킵니다. 화합하고 사랑하는 일은 잘 못하고, 남을 죄인을 만드는 일, 더럽다고 규정하는 일, 자기 자신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 종교화된 종교인의 특징입니다.
 
유대 사람들도 자기들의 교리를 지키고 자기 자신의 이기적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과 십자가 처형을 받은 자들은 나무에서 내려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합니다. 다리를 꺼껑 죽이는 것은 또 다른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서 생사를 확인하며 고통스럽게 죽입니다.
 
이런 처형의 종류들을 보면 인간이 참 잔인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습니다.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으십니다. 시편 34:19-20에 보면요.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 뼈마디 하나하나 모두 지켜 주시니, 어느 것 하나도 부러지지 않는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의인의 뼈를 부러지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민수기 9:12에도 보면요. 유월절 어린 양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며, 희생제물의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유월절의 모든 율례대로 그렇게 그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이 말씀처럼 유월절 희생제물의 규례대로 어린 양과 예수님을 똑같이 보고 있습니다. 똑같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린 양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 말씀 그대로 지켜집니다. 완전히 희생제물의 규례대로 드려지십니다. 그렇게 예수께서는 이미 죽으신 것이 확인되시고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러자 물과 피가 나옵니다.
 
옛 성화들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계시고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면 그것을 통에 받는 그림들이 있곤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귀하게 여기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물과 피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요한일서 5:6-8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다만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습니다. 성령은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증언하시는 이가 셋인데 곧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일치합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성령과 물과 피로 우리에게 오셨는데요. 요한은 이 증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가현설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자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환상으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고 예수님은 실제로 고난 당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신이 어떻게 고난 받냐는 논리죠. 그래서 예수님의 신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몸을 부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다니셔서 살도 없고 피도 없다.' 예수께서 육신의 고난을 당한 것은 환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자고 하셨고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에 있어서 가장 근워노디는 피, 피와 물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받으신 시밪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같은 생명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를 때 '옆구리'는 원어로 보면 πλευρά 입니다. '인간적인 면'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옆구리는 인간적인 면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와를 창조하실 때도 아담읭 ㅕㅍ구리에 있는 갈비뼈 하나를 뽑으십니다. 성경에서 옆구리라는 것은 인간적인 면과 인간적인 연약한 부분으로 여겨왔습니다. 사사기 2:3에서도요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민수기 33:55에더요.
 
"그들이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바늘이 되어서 너희가 살아가는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이처럼 옆구리라는 것은 아담 때부터 인간적인 것을 상징하고요. 인간의 악한 부분을 상징함으로 적이 괴롭힐 때 옆구리를 찌르고 공격하며 괴롭히는 부분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예수께서도 그 인간적인 부분이 창으로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약한 부분에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환상이 아닌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예수님, 아담과 같은 옆구리를 가지시고 적에 의해 허약한 옆구리를 당하신 인간 예수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스가랴 12:10입니다.
 
"그들은, 나 곧 그들의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 외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슬피 울며, 맏아들을 잃고 슬퍼하듯이 슬퍼할 것이다."
 
스가랴의 말씀처럼 창에 찔린 외아들 예수님을 바라보며 모두가 슬피 울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에서 그 예언은 또 다시 마침표를 찍을 것인데요. 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구름 타고 오실텐데 그를 찌른 자도 다 볼 것이며 가슴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그 말씀을 이루는 일에 온 삶을 바치셨습니다. 인간으로서의 피와 물을 가지시고, 다리와 뼈를 가지시고, 찔린 옆구리도 가지셨습니다. 
 
그 인간적이시고 인간되신 예수께서 말씀을 이루시고 말씀대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믿고 따라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예수께서는 연약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연약한 인간이지만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아버지의 말씀과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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